새로운 꿈과 여행 '피아니스트의 전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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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몇 명의 피아니스트를 기억하고 있다. 글렌 굴드 이야기는 어떨까?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솜씨를 과시했던 굴드는 공연을 기피했던 연주자로 기억된다.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싫어했고 스튜디오 작업을 선호했다. 천재의 기벽, 결벽증을 알수 있는 에피소드다. 영화 ‘샤인’도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을 연주하다가 일순 장애의 늪에 빠지는 이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는,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귀기울이게 된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환상적인 영화다. 배에서 태어나 한번도 뭍에 오르지 않은 연주자가 있다. 그는 오로지 배에서만 피아노를 연주한다. 이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판타지다.

줄거리는 이렇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맥스는 오래된 악기를 팔기 위해 악기점을 찾는다. 여기서 헤어진 친구 나인틴의 연주가 담긴 음반을 발견한다. 그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악기점 주인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나인틴은 1900년에 시작할 무렵 태어난 남자. 그는 유럽인들을 미국으로 실어나르는 버지니아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다. 바다에서만 생활한 나인틴은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으로 승객을 즐겁게 한다. 재즈의 창시자로 소문난 젤리 롤이 승선해 그에게 한판 대결을 청한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주세페 토르나토레 연출작이다. ‘시네마 천국’과 ‘말레나’ 등으로 친숙한 감독이다. 기실 토르나토레의 ‘시네마 천국’ 이후 영화들은 대개 똑같다. 이른바 동경(憧憬)의 영화라고 해야할까. 닿을 수 없는 대상, 사람에 대한 애틋한 연모의 심정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역시 흡사하다. 영화에서 나인틴이라는 피아니스트이자 한번도 바다 외의 풍경이라곤 본적 없는 사람은 누군가를 만난다.

선실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그의 눈앞에 아름다운 여성이 스쳐가는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어떤 여성인지 모르지만 나인틴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음악을 작곡한다. 그리고 나인틴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처음 육지로 갈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시네마천국’이나 ‘말레나’ 등과 겹치는 영화 속 장면은 여성에 대한 판타지이자 영원한 꿈같은 것이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영화의 사실성 여부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나인틴처럼, 그에게 영화라는 매체는 꿈과 환상의 무대인건 아닐지. 영화엔 토르나토레 특유의 농담과 판타지가 어지럽게 뒤섞인다.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가 배에 올라 나인틴에게 “우리 한번 겨뤄볼까?”라며 시비를 걸어오는 장면은 서부극 같다. 그리고 그들은 번갈아 무대에 올라 눈부신 솜씨를 과시해 승객을 놀라게 한다. 꿈은 계속된다.

폭풍이 치는 밤, 나인틴은 배안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다. 넓은 로비에서 피아노 고정장치를 푼채,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배를 휘젓고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것이다. 이 대목은 ‘피아니스트의 전설’이 여행과 미국이라는 현대적 신화, 그리고 예술가의 삶을 모티브로 삼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는 “유일한 현실주의자는 환상주의자다”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긴 적 있다. 펠리니 후기작 중에선 ‘꿈의 배’(1983)라는 작품이 있다. 영화에선 가수와 지휘자, 귀족이 탑승한 어느 거대한 배가 침몰하게 된다. 후대의 영화 연구자들은 이 영화를 “이탈리아 영화의 몰락”을 빗댄 은유로 읽기도 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그런 펠리니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모든 것은 몰락하고 서서히 바닷속으로 잠기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간다. 영원한 것은? 예술 밖에 없다. 이 변함없는 진실을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스크린을 통해 전해준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상상력이라는 거울을 통해 보면 세상은 더 잘 이해할수 있다”고 말한다. 감독의 음악 파트너인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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