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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 채와 콩국 수제비|유익순 여사<시인 박목월씨 부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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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생선요리는 생선의 담백한 맛이 살아있어야 하고 채소 요리에서는 채소의 싱그러운 향기가 나야한다. 우리 집 선생님(시인 박목월씨)은 깊은 시골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식성이 순박하고 까다롭지 않지만 모든 음식에는 식품의 특색이나 지방마다의 독특한 맛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신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향인 경상도의 고유한 음식을 즐기기 때문에 결혼해서 30년 가까이 사는 동안 충청도 출신인 나도 어느덧 경상도 음식에 익숙하게 되었다.
입맛을 잃기 쉽고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는 더우기 가족들의 식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의 독특한 여름 음식으로는 「한천」채와 「콩국 수제비」를 들 수 있다. 바다에서 갓 올라온 휜 우무가사리(한천)를 삶아 묵을 만들어 채를 썬 후 양념간장을 넣어 냉국을 만들면 서늘한 바닷내음이 풍겨오고 소금기가 있어 몸에도 좋다. 이것을 더울 때 냉수처럼 마시기도 하는데 콩 국물을 만들어 말아먹어도 별미다.
또한 손이 많이 가지만 콩국 수제비를 만들어 점심으로 내면 가족들에게 인기가 대단하다. 서울서 만들어 먹는 콩국은 밀가루 국수를 넣어 먹지만 경상도 식은 조금 다르다. 우선 콩을 깨와 함께 삶아서 맷돌에 간 후 체에 거른다. 여기에 찹쌀·차조·수수 등을 이용해서 수제비(새알심)를 만들어 넣으면 점심으로 별미가 된다.
새알심의 크기는 팥죽에 넣는 것의 반정도 크기. 콩국의 맛과 찰곡식의 맛이 합쳐서 구수하다기 보다는 고소한 맛을 낸다.
이것은 소금으로 간을 해서 염분의 부족도 보충할 수 있고 단백질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수제비는 얼음에 채워 두고 콩 국물은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힌 후 식탁에 내면 더욱 제 맛을 낼 수 있다.
요즘 음식은 어디에 가서 먹어보나 맛이 모두 같다고 우리 집 선생님은 늘 불만이다. 함경도 음식은 함경도 음식 맛이 나야하고 경상도 음식은 경상도 음식 맛이 나야 한다는 박 선생님은 무더운 여름 낮에 시원한 콩국을 무척 좋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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