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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생명 던진 퍼포먼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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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도미에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중 일부

‘보잘것없는 제 목숨을 담보로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중략)… 시민 여러분들의 십시일반으로 1억원을 빌려주십시오.’지난 7월 26일 한강에 투신한 고(故) 성재기씨가 사건 하루 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성재기, 내일 한강에 투신하겠다’는 글의 일부입니다. 남성 권리를 찾겠다는 남성연대의 대표였던 성씨는 남성연대 회원과 방송사 기자가 촬영하는 가운데 예고대로 한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가 주검으로 발견된 뒤 ‘극단적인 의사 표현 방식’에 대해 많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신문과 교과서에서는 민주주의 사회의 의사 표현 방식에 대해 어떻게 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생각해볼 문제

생명을 담보로 벌인 퍼포먼스.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사고 소식에 애도를 표하던 많은 사람은 성 대표 지인들이 “원래 의도는 자살이 아니라 퍼포먼스였다”고 했다고 말합니다. 생명을 건 행동이 한낱 퍼포먼스였다니 어쩐지 형용모순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생명을 바친 이를 보면 숭고함을 느낍니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분연히 일어선 순국열사나, 타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의 모습이 그런 예지요.

 하지만 생명을 걸고 한 편의 쇼를 벌이려 했던 성 대표의 행동은 이런 숭고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풍차와 싸우겠다고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엉뚱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게다가 일부 청소년 사이에 이런 행동을 영웅시하며 성 대표가 투신한 마포대교를 찾아 모방 자살을 하려는 이들까지 생겨났다니 심각성을 더합니다.

 신문 기사에서도 성 대표의 행동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8월 6일자 29면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내거는 건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성씨 사건은 이목을 끌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동원할 수 있다는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7월 30일자 33면 기사에서도 ‘어떤 이유에서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담보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짚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까요. 교과서에서는 민주 시민의 의사 표현 방식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교과서에서 찾은 원인과 대안

 성 대표의 퍼포먼스 이면에는 그가 몸담고 있는 남성연대의 주장에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사회가 여성단체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는 데 반해 남성연대는 소외된 채 조직이 고사당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무리수를 둔 셈입니다.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서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하면서 남녀·계층·조직·지역 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런 갈등이 심화하다 보면 사회 전체가 원자화·파편화해 결국 해체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죠. 또 갈등 해결을 위해 폭력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경우 당사자 삶이 파괴되고 공동체는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된다고 덧붙입니다.

 이상적인 해결 방법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갈등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토론하다 보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져 결국 개인과 사회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런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란 힘든 일입니다. 갈등의 양쪽 당사자가 언론 매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도 하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모아 정당이나 시민 단체, 비정부기구 등을 구성하라고 조언합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 개인의 주장을 공동의 목표로 발전시키다 보면 그 안에서 훨씬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의견으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법과 정치 교과서에서도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합니다. 현대 사회가 다원화·복잡화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나타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시민단체나 이익집단과 같은 대안적 정치 기구를 조직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언급합니다. 남성연대 역시 시민단체 중 하나입니다. 교과서에서는 이렇게 자발적으로 조직된 시민단체나 이익단체가 자신의 특수 이익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민주 정치 발전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꼬집습니다.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 과정에 특정 계층의 이익만 반영하고자 하는 태도는 민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현대 사회에서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을 선정하고 집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는 사회 발전을 위한 시민 참여의 의의와 자세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열린 사고로 타인에 대해 배려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상대방 주장에 귀를 막고 내 생각에만 목소리를 높여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교과서 내용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는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 경외 사상’이라는 글을 통해 생명의 존엄함에 대해 일깨워줍니다.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는 내용입니다. 생명을 수단 삼아 퍼포먼스를 벌인 행동이 영웅시되거나 미화될 수 없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랍니다.

오른쪽의 QR코드를 찍으면 극단적인 의사 표현 방식의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집필=명덕외고 김영민(국어)·최서희(국어)·한민석(사회)교사, 청운중 천은정(사회)·유정민(기술가정) 교사

정리=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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