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입 제도 안정과 신뢰 확보가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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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정부가 내놓았던 선택형 수능이 올해 고3만 대상으로 실시된다. 내년부터 영어, 2017학년도엔 모든 과목에서 A(쉬움)·B(어려움)형 구분이 폐지된다. 교육부가 어제 발표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 방안에 따라 선택형 수능은 결국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한 채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이러한 정책 변화가 일선 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겪고 있는 혼란을 줄여주려는 취지라는 점에서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를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3000개가 넘는 대입 전형을 단순화해 전형 유형을 수시모집 4개, 정시모집 2개 이하로 정리하기로 한 결정은 학생과 학부모의 입시 부담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대입이 올바른 방향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조변석개(朝變夕改)하듯 숱하게 바뀌는 것만으로도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불안하고, 피곤하다. 교육부가 결정한 내용을 몇 년도 안 돼 손바닥 뒤집는 일이 반복되면서 대입은 불신의 대명사가 됐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 총 16번, 3년10개월 주기로 바뀌다 보니 우리의 교육제도가 ‘삼년지소계(三年之小計)’라는 비판을 사는 주된 이유도 입시제도의 불안정성에 있다.

 입시를 겪는 당사자들이 바라는 건 한 번 결정된 제도가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어떤 사정이 생겨 제도가 바뀐다면 미리 미리 알려 이에 대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사교육 폐해에서 벗어나기 힘든 배경엔 숱하게 바뀌는 제도, 이로 인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정권에서도 여러 차례 대입 3년 예고제가 나왔으나 이를 지키지 않은 건 교육부였다. 선택형 수능만 해도 3년 전 예고한 걸 시행 1년 만에 뜯어고쳤다.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정책 결정 단계부터 일선 학교 교사·학생·학부모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정책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이를 위해선 정책 결정자나 교육 관료들이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폐쇄적으로 결정하는 사례도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주호 전 장관이 도입한 선택형 수능만 하더라도 2011년 발표될 때까지 고교 교사나 대학 관계자들의 우려를 샀으나 결국은 시행된 뒤 단명하는 운명을 맞게 됐다.

 입시제도는 정권의 교체와 관계없이 유지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고려 대상이 되지 않게 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독립적 위원회가 입시제도를 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김영삼 정부 당시 교육개혁위원회, 김대중 정부의 새교육공동체위원회 같은 기구를 두되 정권의 입맛에 맞게 정책 수정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학생·학부모 등 교육 소비자들이 신뢰하려면 제도의 안정성이 필수다. 이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수능의 개편보다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