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선紙 "佛 시라크 대통령은 벌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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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과 영국의 '프랑스 때리기'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미.영 언론은 이라크 전쟁 반대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쥐.벌레 등에 비유하며 원색적 공격을 퍼붓고 있다.

영국 최대 발행부수(3백50만부)의 타블로이드 일간지 선은 20일 파리에서 무료 배포한 프랑스어 특별판 1면 머리기사에서 '시라크는 벌레'란 제목으로 프랑스 지도를 뚫고 올라온 지렁이와 시라크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게재했다.

신문은 "영국과 미국이 2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를 구했다는 사실을 잊었는가"라며 "프랑스 국민들은 시라크가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힐난했다. 선지(紙)는 21일에도 시라크 대통령이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을 게재하고 "치사한 프랑스의 벌레 시라크가 세계의 규탄을 무시하고 독재자 무가베의 피묻은 손과 악수했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장 자크 아야공 프랑스 문화장관은 "프랑스를 모욕하는 공격적이고 야비한 기사"라고 반발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프랑스 정부가 국가원수 모독죄를 적용해 선지에 4만5천유로(약 5천8백만원)의 벌금을 물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에서는 선지 기사의 배후에 호주 출신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는 머독이 자신이 소유한 선지를 내세워 '시라크 때리기'에 나섰다는 시각이다.

머독 소유의 미국 대중 일간지 뉴욕 포스트는 지난 14일자 1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 중인 프랑스와 독일 외무장관을 족제비로 둔갑시킨 합성사진을 싣기도 했다.

미국인들의 프랑스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 이달 초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프랑스를 좋아한다'는 미국인은 59%로 연초보다 20%포인트나 낮아졌다.

보수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4일 시라크 대통령을 '찍찍대는 쥐'라고 깎아내렸다. CBS방송의 간판 토크쇼 진행자인 데이비드 레터먼은 "프랑스는 이라크에 대한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하고 있으나 2차대전 초 (독일의 침공 가능성에 대해) 더 많은 증거를 원했던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당했다"고 비꼬았다.

유명한 코미디언인 데니스 밀러도 "프랑스 없이 전쟁에 나서는 것은 아코디언 없이 사슴사냥하는 것과 같다(아무 지장이 없다는 뜻)"고 비아냥댔다.

미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레스토랑은 메뉴판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없애고 '프리덤 프라이'로 이름을 바꿨다. 플로리다주의 한 술집 주인은 프랑스 포도주와 샴페인을 폐기한 뒤 "앞으로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는 나라의 포도주만 팔겠다"고 말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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