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출판] '모던 보이 경성을 거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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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보이 경성을 거닐다/신명직 옮김, 현실문화연구/1만5천원

"행상들이 돈푼이나 모아보자고 땐스홀 허가원을 제출하면 불허가이지만, 요사이 카페서는 공공연하게 땐스가 대유행이다. 이러고 보면 공평무사하신 신령님 같다는 경찰들은 아직은 눈을 감는 듯한 게 장차 카페마다 땐스홀 겸영으로 허가를 내릴 예산인 듯…?"

1931년 6월 26일 식민지시대 한 일간지에 실린 글이다. 제목은 '카페마다 딴스홀 경영'. 흡사 요사이 사회면에서 볼 수 있는 세태 묘사보다 외려 리얼할 수도 있다. 70년 전에 등장한 문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인 것이다.

위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붙인 안석영은 누구나 아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노랫말을 지은 사람이라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세기 첫 해에 태어나 딱 절반을 살다갔다.

연극.영화와 관련해서는 배우.무대미술가를 시작으로 희곡.영화대본 작가를 거쳐 영화감독으로 마감한 한편, 처음부터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 도화(지금의 미술과 비슷) 교사와 화가로 활동하면서 미술평론에도 손을 댄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가 1999년에 낸 '서울에 딴스홀을 허(許)하라'에 실린 지식인과 룸펜, 그리고 적지 않은 유명 글쟁이들의 캐리커처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안석영이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분야는 만화 중에서도 '만문만화'라는 것을 통해서였다. 흐트러진 그림(漫畵)과 흐트러진 글(漫文)을 어울러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이다.

현재 도쿄(東京)외국어대 객원교수로 있는 문학연구자인 저자는 이런 안석영의 글그림 중 도드라지는 1백60여개를 모으고, 읽어내기 힘든 본문을 옮기는 입체적인 방식으로 책을 선보였다.

6개의 범주로 나누어 근대도시 경성, 당대에 충격을 주었던 모던걸과 모던보이, 유행, 새로운 결혼문화와 가족, 당대의 사람, 박람회와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근대적인 모습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이번 책은 식민지 시절 한국 땅의 다양한 세태와 현실이 담겨 있다.

중요한 점은 만문만화에 담긴 30년대 현실의 모습이 전통적인 장르인 문학 혹은 미술 등에 담긴 당시 세태 보다 훨씬 리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식민지시대는 식민종주국 일본을 비롯한 선진각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매우 활발했던 때였다. 그 후에 변화가 가속되었으므로 그까짓 할 수 있으나 그 변화는 아직도 영향과 그림자를 남기고 있어 관심을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마침 활동 중인 일본에서 좋은 상태의 자료를 만났고 그래서 도판은 아주 충실하다. 출판사로서도 만만치 않은 노고가 들었을 작업임이 틀림없다. 도판의 글은 원래 것을 표기대로 옮겼는데, 오늘날 표기로 옮겼더라면 가독성이 높아졌을 것이라는 판단도 든다.

이 책 출간을 계기로 전통적인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근대 이후 첫 시사만화인 대한민보의 만평, 1920년대 독자들에 의한 만화운동, 해방 공간의 다종다양한 만화 장르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 우리의 지난 시대에 대한 넓고 깊은 성찰작업이 가능하기를 바란다.

최석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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