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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서 일본 헌법 지키자" 89세 무라야마의 연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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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헌법을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파에 집착하지 말고 모두 결집해야 한다.” 1995년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의 당사자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사진) 전 총리가 18일 기자들과 만나 한 이야기다. 개헌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호헌 세력의 결집을 주창한 것이다.

 일본 사민당 소속인 그는 “이대로 가면 사민당은 미래가 없다. 사민당이 앞장서 불을 지르는 역할을 해 새로운 당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민당은 지난 7월 말 참의원 선거에서 단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힘을 합쳐 평화헌법을 지킨다’는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사민당의 해체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같은 날 일본의 민방 TBS에 출연한 그는 새로운 정당의 출범 시기에 대해 “2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2016년 12월로 예정된) 차기 중의원 선거 때까지는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엔 ‘1강 체제’로 불리는 자민당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특히 우익세력에 의한 헌법 개정만은 막아야 한다는 89세 노 정객의 희망이 담겨 있다.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난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 정계의 이합집산 논의는 어지럽게 진행되고 있다. 물밑에선 뭔가 있는 듯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실제 손에 잡히는 방향성은 없다. 먼저 야당인 민주당과 일본유신회, ‘모두의 당’ 사이에선 연대가 모색 중이다. 7개월 전까지만 해도 집권당이었다가 이제 군소정당급으로 전락한 민주당, 또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공동대표의 위안부 망언 이후 급격히 당세가 위축된 일본유신회, 여기에 ‘모두의 당’의 연대파들이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위기감 속에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연대추진세력이 모두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무라야마가 주창하는 ‘반개헌 연대’와는 거리가 멀다.

 반면에 자민당은 헌법 개정의 우군인 일본유신회와의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최근 하시모토 대표의 측근을 자신의 자문역(내각관방참여)으로 끌어들였고, 자민당은 일본유신회와 국회개혁안을 함께 논의키로 했다. 일본유신회는 ‘야당 연대’와 ‘자민당과의 협력’ 양쪽 모두에 문을 열어놓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중이다.

 이렇듯 어지럽고 국지적으로 전개 중인 정계개편 논의에 무라야마 전 총리는 ‘개헌이냐, 호헌이냐’를 기준으로 통 크게 개편하자는 화두를 던진 셈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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