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보 특수" 들뜬 당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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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만 하겠슈?"

충남 당진읍 내 한 식당 주인은 한보철강 매각 이후 지역 경기가 좋아지지 않느냐는 물음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 말 속엔 내심 강한 기대감이 숨어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직원 회식 등으로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한보 사람'들이 한순간에 발길을 끊었으니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이 오죽했으랴. 야속함과 기대감이 섞인 말이었다.

지난 12일 한보철강 매각 계약이 체결되자 읍내뿐 아니라 송악면 한보철강 제철소로 가는 길목마다 지역민들의 반가움과 소망을 담은 현수막이 내걸렸다. '빠른 정상화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합니다'등 내용으로 40여개를 헤아린다.

당진군개발위원회 이길조(李吉助.62)위원장은 "한보가 빨리 되살아나야 당진 경제도 재도약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서 "이번 매각은 당진이 포항 다음의 '철강 메카'로 자리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은 인수자인 AK캐피탈이 현상 유지 차원을 뛰어넘어 이른 시일 내 B지구의 중단된 공사까지 재개하길 원한다. 1997년 한보철강이 부도나기 전에는 협력업체 직원까지 합쳐 6천여명이 당진군 일원에서 일했다.

상인 金모(46)씨는 "한보 월급날엔 군 전역의 음식점.술집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매각 성사에 가장 감격스러운 사람들은 역시 한보철강 직원들이었다.

"가동을 멈춘 핫코일 열연공장이 올 하반기에 정상화, 떠나보낸 옛 직원들을 다시 맞을 생각을 하면 설렘에 밤잠도 안와요. "

근로자협의체인 '한가족협의회'이성만(李成晩.37)대표는 "부도 이후 IMF의 주범이라는 눈총을 받으며 함께 일해온 동료 2천여명을 떠나보내는 심정이 오죽했겠느냐"며 "이젠 다시 똘똘 뭉쳐 한보를 세계적 철강회사로 거듭나게 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최고 3천명이 넘던 직원은 3차에 걸친 정리해고로 현재 6백45명이 남았다.

한보철강의 경영 정상화 신호는 부도 후에도 계속 가동됐던 봉강(棒鋼)공장에서 먼저 나타났다.

최근 몇년째 건설경기 활황으로 철근 수요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4천3백99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그 덕분에 운영자금으로 빌린 차입금(9백56억원)도 전액 갚을 수 있었다. 특히 이번 겨울은 날씨가 춥지않아 공사장의 철근 수요가 부쩍 늘었다.

24시간 풀가동해 하루 4천t의 철근을 뽑아내고 있으나 주문량를 제때 댈 수 없는 형편이다. 하루에 대형 트레일러 2백여대가 분주히 드나들며 전국으로 철근을 실어 나른다.

한 지역 운송업체 최모(55)사장은 "한보 측으로부터 트레일러 추가 배정을 요구하는 전화가 올 때마다 옛 호황이 다시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전율감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한보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항은 실로 크다. 부도 당시 협력업체만 3백곳도 넘었으며 이들의 부도액은 모두 1천5백여억원에 달했다. 도산된 업체만 1백곳을 헤아릴 정도니 한보가 정상화되면 이들 업체가 되살아나 충남 서북부 지역의 경기를 이끌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고용증대 효과도 금세 나타날 것이다. 핫코일을 생산하는 열연공장이 정상 가동될 경우 약 5백명이 일자리를 얻고 협력업체들도 직원을 늘려야 한다. 부도 이후 지방세 4백80억원을 못받은 충남도는 밀린 세금 정산과 함께 정상 가동으로 늘어날 세수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장밋빛 청사진 뒤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3년 전 네이버스 컨소시엄과 매각계약을 체결했으나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파기된 전례가 있어 매각대금 4천5백50억원이 계약대로 5개월 내 지불되느냐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열연공장 가동을 위해 1천억원의 추가 투자가 뒤따라야 하고 향후 B지구를 완공하려면 약 1조8천억원이 드는데 인수자가 그만한 재원을 마련할 능력이 있느냐는 아직 미지수다.

당진=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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