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비리 수사, 한전 부사장도 걸려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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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비리 수사가 한국전력으로 확대됐다. 그간 한국수력원자력 및 관련 부품·설비업체에 머물렀던 수사가 한수원 모회사인 한전으로까지 넓혀진 것이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비리수사단(단장 김기동 지청장)은 한국전력 이종찬(57·사진) 해외부문 부사장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이 부사장은 2008년 JS전선이 부산시 기장군 신고리 1·2호기 등에 납품한 케이블의 시험성적서 위조에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원전비리 수사의 계기가 된 바로 그 사건이다. 당시 이 부사장은 한수원 신고리 제1건설소 부소장으로 신고리 원전 1·2호기 건립을 담당했다.

 검찰은 이미 구속기소된 한수원 송모(48) 부장으로부터 이 부사장이 연관됐다는 진술을 받아 수사를 확대하고선 이 부사장을 체포했다. 송 부장은 JS전선 시험성적서 위조를 공모하고, 현대중공업에서 10억원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2008년 이 부사장과 함께 신고리 제1건설소에서 일했다. 송 부장은 검찰에서 “JS전선의 제어케이블이 시험에서 계속 불합격돼 승인이 늦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이종찬 부사장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합격을 받던 JS전선은 결국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납품에 성공했다.

 검찰은 이 부사장이 JS전선의 시험성적서 위조를 지시했거나, 내용을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이 부사장이 한수원과 한국전력에 근무하면서 여러 원전 관련 업체로부터 납품청탁과 함께 수천만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를 잡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곧 이 부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 부사장과 송 부장은 2008년 이전에 원전 설계와 제작·구매를 담당하는 한수원 본사 사업관리실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2010년에는 같이 한국전력으로 옮겨 2년여 동안 해외 원전의 설비 및 부품 구입 관련 업무를 했다. 이때가 송 부장에게 10억원을 건넨 현대중공업이 2200억원대 원전 관련 설비를 납품한 시기다. 송 부장이 받은 10억원 중 6억원은 그의 자택과 지인 집에서 발견됐으나 4억원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4억원이 이 부사장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에 대해 검찰은 “조사 결과 이 부사장은 4억원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부사장은 한전에서 설비 구매 등을 담당하는 원전EPC사업처장으로 재직하다 올 6월 해외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국정원 출신 한국정수공업 고문 구속=원전비리수사단은 이날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한국정수공업 윤모(57) 고문을 구속했다. 국가정보원 출신인 윤씨는 한국정수공업 부회장을 맡았던 원전 브로커 오희택(54·구속)씨로부터 원전 관련 기관에 대한 인사청탁 로비자금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한국정수공업이 납품을 잘하려면 원전 관련 주요 기관에 잘 아는 인물을 앉히는 인사 로비가 필요하다”며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돈이 윤씨를 통해 정·관계 고위층에 실제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 윤 고문은 이런 식의 로비가 필요하다는 오씨의 주장과 소개에 따라 한국정수공업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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