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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해전 이순신 청산리전투 김좌진 그 둘의 장한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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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강일구]

13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1800t급 잠수함 김좌진함 진수식이 열려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다는 소식이다. 8월·옥포·김좌진 등등 여러 상징이 동시에 느껴진다. 날짜부터가 68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뒀다. 옥포는 임진왜란 개전 다음 달인 1592년 5월 7일 이순신 제독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처음으로 왜군을 무찌른 옥포해전의 무대다. 동해를 비롯한 우리 바다를 지킬 잠수함으로 부활한 김좌진 장군(1889~1929)은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장독립투쟁 영웅이다. 20년 만주 지린(吉林)에서 벌어진 청산리전투에서 독립군을 지휘해 일본군을 무찔렀다.

 자료를 조사해보니 당시 무기가 부족했던 독립군은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체코군단으로부터 총과 탄약을 입수해 전력을 갖췄다고 한다. 체코군단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징집됐다가 러시아 포로가 된 체코인들로 이뤄진 부대다. 이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로 싸워 조국의 독립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혼란이 벌어지자 무장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서유럽 전선으로 가려고 시도했다. 지구를 거의 반 바퀴나 돌아 전쟁이 끝난 19년에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6만7700여 명의 체코인은 이곳에서 우리 독립군과 만났을 것이다. 나라 잃은 설움을 잘 알았기에 접근해온 독립군에게 무기를 팔았던 모양이다. 2011년 주한 체코 대사가 당시 자료를 서울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립이라는 대의 앞에서도 ‘공짜’는 없었던 듯하다. 귀국한 체코인들이 신생 조국 체코슬로바키아로 들고 간 유물 중에 한국의 은비녀·금가락지가 있었던 걸 보면. 이 내용을 발견했을 때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은비녀와 금가락지를 선뜻 뽑아 독립군 군자금으로 내놨을 이름 없는 여성들이 떠올라서다. 청산리전투는 이처럼 평범한 아낙부터 지도자까지 수많은 사람이 뜻과 힘을 모아 이룬 공동체의 승리였던 것이다.

 김좌진함이 진수되던 그날 오전,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의 노제 사진을 보고 울컥했다. 87세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소녀상만큼 앳된 나이에 당했을 수난이 떠올라서다.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국민이 어떤 고난을 당할 수 있는지를 웅변한 하루였다. 지금 중3 학생부터 대입에서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된다고 한다. 이들이 청산리전투, 종군위안부를 배우게 돼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국사를 수능 필수화한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바로 전날, 일본 총리는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고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뜨거운 8월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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