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차명 금지' 아니라는 사실, 그땐 굳이 얘기 안 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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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드디어 우리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합니다.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집니다.”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45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긴급명령으로 실명제 실시를 전격 선언했다. 하지만 이 ‘실명으로만’의 의미가 차명 거래 금지까지 포함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정부도 처음에는 어물쩍 넘어갔다. 당시 재무부 사무관으로 실명제 도입을 위한 작업반에 참여한 최규연(57·사진) 현 저축은행중앙회장은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착각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굳이 나서서 얘기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실명제 도입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게 최우선인 때 괜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는 “차명 문제는 자칫 큰 논쟁을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이었다”면서 “어찌 보면 그렇게 넘어갔기에 초기에 큰 혼란 없이 실명제가 정착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실무진들도 차명 금지 문제를 검토하기는 했다. ‘참고서’도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꾸려졌던 1989년 실명제 실시단에서도 차명 문제를 놓고 씨름했었기 때문이다. 거래 유형별로 규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리려는 시도도 그때 있었다. 하지만 관련 서류를 들여다본 작업단의 결론은 ‘차명 금지 도입 불가’였다.

 최 회장은 “차명 거래는 성격상 사전에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이를 법으로 금지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차명 금지와 당시 도입하려던 실명제는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는 것이다. 그는 “실명제법은 사실상 금융기관에 실명 확인 의무를 주고, 어떤 방식으로 하라고 정해놓은 일종의 금융기관 규제법”이라면서 “이를 고객들로까지 확대해 차명 거래하지 말라는 의무를 지우는 건 법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 그리고 법을 통과시켜야 할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차명 거래도 금지된 것으로 오해한 경우가 많았다. ‘실명제=가명·차명 금지’가 당연하다는 인식에서였다. 최 회장은 “차명 문제는 실명제가 남긴 최대의 에피소드라고 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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