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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조 공약 재원 위해 사실상 증세 … 봉급자 반발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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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2011년 연봉이 3450만원을 초과하는 근로소득자는 434만 명. 연봉 상위 28%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내년 1월 월급명세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라게 돼 있다. 월급날 떼이는 소득세 원천징수액이 껑충 뛰면서 실수령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장 충격이 클 사람들은 연봉 7000만~1억원을 받는 근로소득자들이다. 8일 발표된 세법개정안에 따라 이들의 세 부담은 평균 33만~113만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한창 지출이 많은 40~50대 가장이 많은 소득구간이어서 부담의 무게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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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재정부는 이런 지적을 우려해 2013년 세법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어느 해보다 많은 고심을 했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방침에 따라 증세하지 않으면서도 공약 이행에 필요한 135조원의 재원을 마련하는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야 해서다. 그래서 기재부가 장고 끝에 꺼낸 ‘묘안’이 중산층·고소득자를 겨냥한 소득공제 구조조정이다. 소득공제는 과도한 비과세감면의 대표 사례가 되면서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부터 정비가 예고됐었다.

 문제는 급격한 부담에 따른 조세저항이다. 연말정산 때 ‘13월의 월급’으로 불리는 소득공제 축소는 근로소득자들의 세 부담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35조원이 들어가는 박근혜정부의 복지 공약에 대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서 유리알 지갑을 턴다면 조세저항은 불 보듯 뻔하다. 기재부는 이를 피하기 위해 장고를 거듭했다. 그래서 내놓은 대표적인 논리가 중산층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중산층은 딱 중간 소득의 50%에서 150% 사이로 범위가 넓다. 이 기준으로 우리나라 중산층의 연간소득 상한은 5500만원이라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그 이상은 고소득층이 된다.

 이를 기준으로 기재부는 사실상 증세를 시도하고 있다. 기재부가 제시한 소득계층별 평균 세 부담 변화를 보면 연봉 5000만원 초과 근로자들부터 세 부담이 미미하지만 증가하기 시작한다. 7000만원을 초과하면 실질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그러나 통계적인 ‘중간’이 우리 생활 수준의 ‘중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정부의 주택 관련 서민 지원 기준도 가구소득 6000만원이다. 기재부가 내세운 중산층 개념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중산층 개념과는 거리감이 크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김낙회 기재부 세제실장은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고, 저소득층을 지원 확대한다는 박근혜정부 국정과제에 맞춰 정상이 아니었던 소득세 체계를 정상화했다”고 소득세 체계 개편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이런 방침에 따라 기재부는 전체 근로자의 72%가 포함되는 총급여 3450만원 이하 근로자에 대해 1조7000억원의 세제를 지원할 예정이다.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와 자녀장려세제(CTC) 신설을 통해서다. 이 부담은 ‘434만 명’이 지게 된다. 이들에게 1조3000억원을 더 걷고, 나머지 4000억원은 비과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조달한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공약의 우선순위 조정도 없이 사실상 증세부터 하는 것은 조세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소득세 체계를 정상화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소득세는 최고세율(38%) 외에 35~6%까지 모두 5단계 누진세율 체계다. 그동안 과도하게 세율을 낮춰주고 소득공제가 남발되면서 소득세가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소득세율은 2002년 내수 진작을 위해 세율을 낮춰주면서 계속 낮아졌다. 최저세율만 보더라도 2002년 9%→2005년 8%→2009년 6%로 계속 낮아졌다. 여기에 온갖 명분의 소득공제가 운영돼 소득세 세수 비중이 선진국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박춘호 기재부 소득세제과장은 “캐나다에서는 소득공제가 아예 운영되지 않고 있으며 상당수 선진국에서는 소득공제 적용 비율이 낮다”고 말했다.

 소득세와 달리 이명박정부 때 인하된 법인세는 손대지 않을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법인세 인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되레 올렸다가는 소리 소문 없이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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