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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너무 위험한 '성재기 투신' 미화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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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유정
사회부문 기자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씨가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한 건 지난달 26일이다. 5일로 꼭 열흘이 흘렀다. 그동안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네이버 블로그에는 성씨의 죽음을 미화하는 웹툰과 글이 계속 올라왔다. 현재도 빠르게 퍼지고 있는 이 웹툰과 글들은 대부분 성씨를 여성부라는 거대 권력과 홀로 싸우다 희생당한 영웅으로 표현하고 있다.

 웹툰 ‘성재기 헌정만화, 영웅’에서 여성부는 거대한 팔뚝으로만 묘사된다. 다른 남성들이 이 팔뚝 앞에서 두려움에 떨 때 성씨는 “한판 붙자”며 홀로 맞선다. 또 다른 웹툰은 ‘자살 퍼포먼스를 막지 못해 미안하다, 남성을 대변해 온 성 대표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웹툰 마지막엔 미소 짓는 성씨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그를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로 패러디한 게시물도 돌아다닌다. 유명인들도 성씨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듯한 말들을 보탰다. 정미홍 더코칭그룹대표는 지난달 29일 “(성씨의 죽음은) 노무현(전 대통령)보다 10배는 당당한 죽음”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문제가 되자 사과했다.

 성씨의 죽음이 미화되면서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성씨 웹툰이 나오자 “(그의 죽음은) 순진한 영웅의 투신이었다” “성 대표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뜻을 이어가자”는 댓글 반응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방행동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주말 마포대교에서 두 명의 젊은 남성이 투신을 시도하다 직전에 구조됐다. 웹툰 ‘영웅’의 마지막 부분에도 성씨를 뒤따르는 남성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여성부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성씨의 생각만이 아니라 극단적인 의사표현 방법까지 닮을까 우려되는 이유다.

 남성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성씨의 평소 지론은 공감 가는 측면도 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남성들이 박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이다. 병역 문제와 아동청소년보호법의 불합리성을 문제 삼는 남성연대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성연대 관계자에 따르면 성씨는 애초 자살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진심으로 자살을 의도했다기보다 이목을 끌기 위해 ‘자살 퍼포먼스’를 기획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내거는 건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성씨 사건은 이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든 동원할 수 있다는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기억해야 한다.

이유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