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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상태 지속된다고 연명의료 중단 안 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연명의료의 환자 결정권 제도화 권고안’을 발표했다. 제도가 마련되면 환자는 자신이나 가족, 병원 윤리위원회의 결정(대리인이 없는 경우)으로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중단하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을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하지만 환자의 뜻을 추정하거나 대리 결정하는 과정에서 남용 위험에 대한 논란이 있어 입법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권고안을 바탕으로 연명의료 중단 제도화에 관한 정부안을 올해 안에 마련한다는 목표다.

 생명윤리위는 권고안 마련을 위해 지난해 12월 의학계·종교계·법학계·환자 단체 등 각계 전문가 11인이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별위원회 이윤성(서울대 의대 교수·사진) 위원장을 2일 서울 연건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 권고안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 대상을 최소화한 방안”이라며 “권고안 이름은 당초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였으나 ‘무의미한’이란 단어에 가치판단이 들어 있고 ‘치료’가 회복 가능성을 암시할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의료’로 바꿨다”고 말했다. 2011년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명의료 중단 의식조사에 따르면 ‘중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72.3%다. 가족들의 고통(69.4%·중복 응답), 고통만 주는 치료(65.8%), 경제적 부담(60.2%) 등의 이유에서다. 다음은 이 위원장과의 일문일답(※는 이해를 위한 설명).
 
 -권고안 마련 배경은.
 “무엇보다 환자 자신, 가족 그리고 의료진을 위한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만은 법으로, 일본은 가이드라인으로 이를 정하고 있다. 미국은 주에 따라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이 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할 때도 기준이 없다. 한쪽에서는 연명의료를 중지해야 할 상황인데도 계속하는 경우가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연명의료를 일단 시작하면 끊을 수 없으니 아예 처음부터 받지 말자는 상황이 벌어진다. 치료를 받으면 회복 가능성이 있는데도 연명의료가 계속될 것을 걱정해 아예 치료를 안 받는 거다. 1997년 보라매병원에서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해온 환자가 부인 요구로 퇴원한 뒤 숨진 일이 있지 않았느냐.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도 있었다. 의사들은 특히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매우 불안해 한다.”

 (※보라매병원 사건에 대해 2004년 대법원은 환자 부인에게 살인죄, 의사에게 살인방조죄 판결을 내렸다. 환자가 회복 가능성이 있었다는 전제 아래 내린 판결이다. 김 할머니 사건은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에 불을 지핀 사건이다. 2008년 70대의 김모 할머니가 식물인간 상태에 처하자 자녀들이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으나 병원 측이 반대해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결국 법원이 2009년 5월 자녀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연명치료 중단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무려 201일을 더 살았다.)

 -대한의학회의 2009년 연명의료 중지에 관한 지침에는 중단 대상에 ‘6개월 이상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 권고안에 ‘식물상태 환자’는 빠져 있다.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는 그 범위가 매우 넓고, 안락사 조장 위험이 있어 제외했다. 굉장히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환자가 식물상태에서 깨어날 수도 있다. 삶의 존엄성이 훼손될 정도의 상태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금의 의학으론 치료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회복 가능성이 있는데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걸 고려해 연명의료 중단 대상을 최소한으로 잡았다.

 연명의료 중단 대상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 효과가 없으며 ▶급속도로 악화하는 임종기(臨終期·dying process)에 있는 환자다. 이 세 가지 요건을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환자 상태에 대한 의학적 판단은 담당의사와 담당의사가 아닌 해당 분야 전문의를 포함해 의사 두 명 이상이 한다.”

 -식물상태 환자의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혀도 의사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는 연명의료 중단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다만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 효과가 없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폐렴·욕창·요로감염 등으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임종기에 이를 때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선 이번 권고안에 대해 ‘대상을 너무 최소한으로 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연명의료 중단 대상 인원이 100이라면 이번 권고안은 30 정도일 거다. 연명의료 중단은 생명윤리의 문제다. 법은 윤리의 최소한이다. 법으로 만들어질 기준이 될 것이기에 최소한으로 했다.”

 (※환자 또는 가족 등이 결정할 수 있는 연명의료는 전문적인 의학지식과 기술·장비가 필요한 특수 연명의료로 제한된다. 영양·수분공급, 통증치료 등 일반 연명의료는 중단할 수 없다.)

 -환자 본인의 의사표시가 없거나 가족·법적 대리인도 없으면 병원윤리위원회가 연명의료 중단을 대리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병원윤리위원회가 없는 곳도 있고, 과연 제대로 할 수 하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연명의료 결정위원회’ 같은 공적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큰 병원에는 대부분 윤리위원회가 있다.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 문제는 작은 병원인데 보건복지부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에 지역 단위로 해당 병원이 참여하는 ‘공영 윤리위원회’ 같은 걸 만들면 될 것으로 본다. 구체적 논의가 있었던 건 아니다. 제3의 공적 기구를 설립하면 서류심사가 중심이 될 텐데, 한계가 있다. 환자의 상태는 진료에 참여한 의사가 가장 잘 안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에는 ▶환자의 명시적 의사표시(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 계획서 등) ▶추정적 의사표시(과거 작성한 사전 의료의향서·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 ▶대리결정(법적 대리인·환자를 대신할 사람이 없으면 병원윤리위)이 있다. 모든 경우에 의사 2인 이상의 의학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

 -경제적 이유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언급하기 대단히 어려운데, 현실적인 문제다. 경제적 이유로 연명의료를 중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원회에서 논의했던 것은 아니고 개인적인 의견인데, 정부가 기금을 만들어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지금도 응급치료의 경우에는 절차가 복잡하기는 하지만 환자가 치료비를 내기 어려우면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

 -연명의료 중단 제도가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문화적 토대는.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잘 갖춰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많이 부족하다. 선진국을 보면 호스피스·완화의료 시설이 경치 좋은 곳에 콘도처럼 자리 잡은 곳이 꽤 있다. 환자가 연명의료 대신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둘째,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이야기하는 걸 꺼리고 준비도 너무 안 한다. 가족 간에 바캉스 논의만 하지 말고 죽음에 대한 논의도 해야 한다. 셋째, 의사들도 공부해야 한다. 우리 의사들은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공부만 했지, 어떻게 삶을 편안히 마무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 이 세 가지가 갖춰져야 연명의료 중단 제도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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