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60주년 날, 하나 된 남북 여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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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8일 붉은악마 응원단이 이순신 장군(위 사진 왼쪽)과 안중근 의사가 그려진 대형 통천 응원을 펼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일본 응원단이 욱일승천기를 흔드는 모습. [김성룡·김진경 기자]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이던 지난 27일 남북 여자축구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하나가 됐다.

 북한은 27일 열린 중국과의 2013 동아시안컵 최종전에서 수비수 이은향(25·압록강FC)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한국이 이어서 열린 일본과 경기에서 비기거나 이기면 북한이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북한의 김광민 감독은 “남측 선수들이 모든 능력을 발휘해 꼭 이겨줬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북한 선수들은 라커룸 앞에서 마주친 한국 선수를 안아주며 격려했고, 후반전에는 관중석에서 응원전을 펼쳤다.

 그 바람대로 한국은 일본을 몰아붙였다. 지소연(21·아이낙 고베)의 2골로 일본을 2-1로 꺾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북한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와 한국 선수들과 하나로 뒤엉켜 기뻐했다. 양국 선수들은 시상대에 함께 올라 사진을 찍고 포옹했다. 서울과 평양에서 따로 정전 60주년 기념식을 하던 날, 그라운드에서는 여자축구가 멋진 승리와 우승을 합작한 셈이다. 한국 주장 심서연(24·고양대교)은 “일본이 우승한 것보다 훨씬 좋다”며 기뻐했다.

  남과 북의 사령탑도 덕담을 주고받았다. 윤덕여(52) 한국 감독과 김광민(51) 북한 감독은 1990년 10월 23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통일축구대회에서 함께 그라운드를 누빈 인연이 있다. 윤 감독은 23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손을 맞잡은 김 감독에게 “여기(잠실) 운동장 기억하느냐”고 물었고, 김 감독은 “기억이 생생하다.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고 인사했다.

 이튿날 오전 북한 선수단은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지난 19일 입국 때와 똑같은 감색 단복을 입었지만 표정은 훨씬 밝고 명랑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처음엔 선수들이 경직돼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우리와 똑같았다. 선수들은 ‘웨딩홀’ 등 주변에 보이는 낯선 단어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봤고, 호텔 직원들에게 친숙하게 말을 걸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안민석(47) 민주당 의원은 ‘경평(서울·평양)축구 부활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며 “정치와 외교력만으로는 남북경색 국면을 돌파하기 어렵다. “아시안컵 여자축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28일 밝혔다.

글=손애성·김지한 기자
사진=김성룡·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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