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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로 춘천 간 대통령 … 들썩이는 강원 민심 다독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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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이 24일 강원도 춘천시 서면 강원창작개발센터를 방문해 박흥수 강원정보문화진흥원장(왼쪽), 최문순 강원지사(오른쪽)와 함께 레고랜드 개발예정지를 둘러보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춘천 방문 후 원주를 찾아 의료기기산업단지 현장도 둘러봤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거의 매년 초마다 지방 ‘초도순시(初度巡視)’를 다녔다. 초도순시란 관할 지역을 처음으로 순회하며 시찰하는 걸 말한다. 지방을 방문한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전년도 실적과 신년 계획을 꼼꼼히 청취했다. 박 전 대통령이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첫해인 1972년 등 여러차례 강원도에서 초도순시를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 첫 지방 업무보고를 24일 강원도에서 시작했다. 허태열 비서실장과 곽상도 민정수석을 제외한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원,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등 5개 부처 장관이 수행했다. 이날 서울역에서 전용열차를 타고 한 시간가량 걸려 춘천역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강원도청에서 민주당 소속의 최문순 지사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강원창작개발센터, 원주 의료기기산업단지 현장을 둘러봤다.

대선 때 지지율 62% … 영남 빼고 최고

 이례적으로 하루 종일 강원도 일정을 잡았다. 첫 업무보고 지역으로 강원도를 택한 건 박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강원도는 박 대통령에겐 각별한 지역이다. 대선 승리의 발판이 됐던 지난해 총선에서 박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이끈 새누리당에 강원도는 의석 9개를 모두 몰아줬다. 대선에선 박 대통령에게 62%의 지지를 안겼다. 영남을 제외하곤 가장 높은 지지율이었다.

 그런 강원도 민심이 최근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강원도행의 배경이 됐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5월 지방 공약가계부를 발표하면서 박 대통령의 강원도 제1공약이었던 ‘춘천~속초 간 동서고속화철도 조기 착공’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으로 분류한 것이 거센 반발을 불렀다.

 박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업무보고에 앞서 “춘천∼속초 간 동서고속화철도 등의 사업들에 대해 걱정이 많으신 걸로 안다”며 “꼭 경제성만으로 지역 공약사업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이 사업을 장기적으로 유라시아 철도와의 연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국가 차원의 전략적 선택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공약, 경제성만으로 결정 안 해”

 박 대통령은 강원도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광역지자체를 찾아 업무보고를 받고 지역의 불만을 다독인다는 계획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형식적인 전시성 지역 업무보고 일정을 지양하라’는 뜻을 밝혀 한 달에 2~3곳 정도씩 전국 18개 시·도를 모두 방문하는 데 적어도 5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지역 공약 실천방안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지역의 원성이 커졌다”며 “지역 공약 실천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재부가 124조원을 지역 공약에 투입한다는 계획이지만 난점이 적지 않다”며 “하지만 당초 복선으로 제시했던 여주~원주 간 철도를 단선으로 재기획해 관철시킨 것처럼 지역에서 요청한 중장기 사업들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도순시나 박근혜 대통령의 지방 업무보고처럼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초부터 서로 다른 스타일로 지역 전략을 구사해 왔다. 박 전 대통령의 초도순시 방식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을 거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중반기까지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은 93년 3월 18일 광주를 시작으로 같은 달 27일까지 ‘당일 귀경원칙’으로 전국 15개 시·도를 방문했다. 당시 청와대는 “당일 귀경으로 최단기간 지방순방 기록을 세웠고, 순방 중 6000명과 악수를 하며 최다 기록을 남겼다”고 홍보했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이후 토론형 보고

 이런 스타일이 변한 건 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였다. 김 전 대통령 집권 중반 이후 일방적인 보고 대신 토론 형식의 업무보고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지방 일정 때마다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고려한 ‘선심성 공약’ 발표도 이뤄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정개혁 보고회의’라는 이름으로 3개월여에 걸쳐 지역 방문을 진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들이 매년 초 지역을 돌며 업무보고를 받던 것과 달리 지방에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참석했다. 형식도 토론회, 지역인사들과의 오·만찬이나 간담회 등을 선호했다. 그러나 2004년 탄핵사태를 거친 뒤인 2005년부터는 당시 이해찬 총리에게 지방순회를 맡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지역에서 실시하는 방식으로 지방 방문 일정을 잡았다. 참석자는 장·차관과 외청장, 본부 국장 등으로 한정했다. 효율성을 중시한 타입이었다. 시간도 1시간30분 이내로 줄였다.

신용호·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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