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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 먹구름에 숨막힌 대륙 '세계의 굴뚝' 대청소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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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줄기세포 기반 의료제품 사업을 하는 한국인 A씨는 최근 중국 공산당의 재정 담당 간부인 B씨를 알게 됐다. 미국 고교로 갓 유학한 B씨의 아들을 동급생인 A씨 아들이 잘 돌봐준 인연으로 맺게 된 ‘관시(關係·친분)’였다. B씨는 A씨에게 “약간의 성의 표시만 해주면 사업의 뒤를 봐주겠다”고 제안했다. B씨의 조건은 단 하나였다. “환경 관련 아이템을 가져오라. 다른 건 필요 없다”고 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63빌딩에선 한·중 기업 초청 행사가 열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부부와 친분이 있는 유력 인사가 중국 측을 대표해 참석했다. 그는 한국의 환경 분야 기업들을 물색해 중국 정부와 연결시켜 주겠다고 목적을 밝혔다. “지금 중국이 가장 목말라 하는 분야가 환경 산업”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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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인재 엑소더스 … 독스모그 대책 비상

 환경 문제가 중국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시진핑 정부가 환경 관련 산업 육성과 환경오염 규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데 따른 현상이다. 중국 정부는 2010년 말 12차 5개년(2011~2015) 계획 수립 당시 경제 발전의 5대 원칙 중 하나로 ‘자원절약형, 환경친화형 사회 건설’을 내세울 정도로 환경 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에 불거진 베이징 등 대도시의 심각한 대기 오염 이슈는 신생 정부에 크나큰 부담을 안겼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에어포칼립스(airpocalypse·공기오염으로 인한 종말론)’란 용어를 쓰며 “대기오염으로 인해 글로벌 투자, 인재 유치가 어려워졌다”고 언급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고소득 전문직 외국인들의 탈중국 현상이 중국 경제·산업에 막대한 손실을 끼칠 것”으로 분석했다.

 나쁜 뉴스는 최근에도 이어졌다.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지난 30년 동안 중국인의 폐암 사망률은 4배로 늘었다. 스모그가 중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을 5.5년 단축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뼈·내장 등에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는 카드뮴이 기준치 이상 함유된 쌀이 대량 유통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도시별 차량 구입 할당, 석탄 판매 금지

  다급해진 중국 각급 정부는 잇따라 각종 환경 관련 규제와 지원책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환경보호부는 9월부터 1만5000여 곳의 오염 통제 대상 사업장을 지정해 오염물질 배출 수치를 공개토록 최근 결정했다. 지정된 사업장들은 오염물질 배출량 등 31개 항목의 세부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해야 한다.

 대기 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자동차 구입 제한도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톈진·충칭·청두·항저우·선전·칭다오·스자좡·우한 등 8개 도시에서는 올해 안에 ‘차량 구입 할당제’가 실시된다. 도시별로 매월 판매되는 신차의 대수를 제한하는 제도다. 이미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베이징·상하이 등지에선 자동차 구입이 과거 한국의 청약 아파트 당첨처럼 어려워진 상황이다.

 중국 최고인민법원과 검찰원은 환경사고로 인해 30명 이상의 중독자를 내거나 재산 피해액이 30만 위안(약 5500만원) 이상인 경우 또는 불법 투기한 위험물질이 3t이 넘는 경우 등을 ‘엄중 오염사고’로 규정해 엄벌하겠다고 지난달 18일 밝혔다.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는 “대기 질 개선을 해결하려면 보다 강경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환경보호를 위한 10개 항의 대책을 지난달 발표했다.

 지방정부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광둥성의 산업도시 선전(深?)시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지난달 18일 중국 최초로 도입했다. 베이징·상하이·톈진 등도 올해 안에 시범 도입할 예정이다. 하얼빈시는 5월 중국에서 처음으로 시내에 원탄 판매 금지구역을 지정했다. 석탄 연료 때문에 대기 질 악화가 심해지자 공업지역과 개발구 등에 원탄을 팔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을 부과한다.

 오염시설 반대 시위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도 변했다. 광둥성 허산(鶴山)시 정부는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가 이 지역에 추진하던 우라늄 재처리 공장 건설을 취소한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 시민들은 전날까지 시청 앞에서 ‘방사선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여 왔다. 과거 국유 기업의 시설 건설에 우호적이던 지방 정부가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선 시민과 시위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쿤밍에 정유공장 건설을 추진하던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와 시 정부도 주민 반대 시위에 손을 들고 석유화학 제품인 파라자일렌 생산설비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친환경 산업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류밍캉(劉明康·홍콩중문대 명예교수) 중국은행감독위원회 전 위원장은 2020년까지 중국에서 뜰 10가지 업종을 선정하면서 법률 서비스 다음으로 녹색산업을 꼽았다. 국무원은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 분야를 7대 전략 신흥산업 중 첫 번째로 지정, 2020년까지 5조 위안(약 910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아시아개발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지난해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3.8%, 1조8500억 위안에 달했다.

 지방 정부의 관련 예산 규모도 천문학적이다. 한국 중소기업이 많이 진출한 산둥성 정부는 2015년까지 대기·해양오염 방지장치, 고체폐기물 처리 등 환경 프로젝트에 1345억 위안을 투자할 방침이다. 삼성전자의 시안(西安) 공장이 들어설 산시(陝西)성은 가난한 지역임에도 역내총생산(GRDP)의 3% 수준인 176억 위안을 이 분야에 투입한다.

환경사업 910조원 투자 … 주변국엔 기회

 한국 기업의 환경분야 진출은 아직 초기 단계다. 베이징의 경우 수(水) 처리, 폐기물 처리 등에 중소기업 두세 곳이 진출해 있다. 포스코 건설은 광둥성 포산(佛山)시에 지사를 두고 수처리, 에너지 재생, 공기정화, 배수관 최적화 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삼성SDI도 현지 업체와 합작을 통해 자동차전지 시장에 진출하려 한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국내 친환경 산업계는 큰 기회를 맞을 전망이다. 박한진 KOTRA 중국사업단장은 “외국 기업들도 관심을 갖고 있어 우리가 중국 시장을 선점하는 게 필수적”이라며 “FTA 협상을 통해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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