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주민 "오후 6시 30분, 야구장 소음에 혈압 오르는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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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아파트 5단지 530동 한 아파트에서 바라본 목동구장. 야구장 소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탓에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이렇게 창문을 모두 닫는다. 김경록 기자

6일 오후 7시30분. 프로야구팀 넥센 히어로즈 간판타자 이택근의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관중석에서는 “와~” 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4회 말 1사 만루 상황에서 주자가 모두 홈을 밟으면서 LG 트윈스로 기울었던 경기가 2대2 동점이 됐다. 넥센 관중석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딱! 딱! 딱!’ 막대풍선 부딪히는 소리가 더 요란해졌다.

 경기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는 100여m 남짓 떨어진 목동아파트 530동 13층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집 마루 TV에서 나오던 예능 프로그램은 야구장 소음에 잠시 묵음 상태로 전환한 것 같았다. 집 주인 선영미(40·주부)씨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선씨는 “그나마 (열성 팬이 적은) 넥센이 점수를 내서 저 정도지 (열성 팬이 많은) LG가 점수 낼 때는 훨씬 더 시끄러워요”라고 말했다. 숙제 하던 선씨의 아들 오경호(15·양정중 3)군이 경기장에서 응원단이 부르는 넥센 이택근 선수 응원가를 따라서불렀다. “히어로 이택근~ 승리를 위하여~.” 오군은 “하도 듣다 보니 넥센 팬이 아닌데도 응원가를 저절로 다 외우게 됐다”고 했다.

 목동아파트 단지는 서울의 대표적인 중산층 거주지 중 하나다. 학군 좋고 단지가 조용해 특히 학부모가 선호하는 동네다. 그중에서도 요지인 5단지 주민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이사하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곧 이사 나간다는 한 주민은 “떠난다고 생각하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말했다. 이유는 딱 하나, 바로 목동구장 소음 때문이다.

관중 함성, 공사장보다 시끄러운 79.9㏈
넥센, 2008년부터 목동 연고지로 사용
옮기겠다던 약속 어기고 계속 잔류키로
서울시는 뚜렷한 대책 없이 뒷짐만

 목동 5단지 주민이 겪는다는 소음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까.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소음측정팀(배명진 교수)에 소음 측정을 의뢰했다. 6일 경기에서 4회 말 동점타가 터지는 순간 측정된 수치는 79.9㏈. 공사장에서 허용되는 소음 기준(주간 65㏈·야간 50㏈)을 뛰어넘는 수치였다. 층간 소음 기준치는 낮 40㏈, 밤 35㏈ 초과다. 8차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목동구장과 마주하고 있는 목동 5단지 아파트 주민들은 공사장보다 시끄러운 소음을 야구 시즌이면 매일같이 겪고 있는 셈이다. 이날뿐이 아니다. 넥센-기아 전이 열린 지난달 7일에도 아파트 단지 안에서 소음치를 여러 차례 측정해 봤다. 결과는 69~72㏈이었다.

 목동구장에서 넥센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목동 5단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다. 일단 베란다와 창문이 일제히 닫힌다. TV 소리도 잠재우는 경기장 소음을 막기 위해서다. 서모(48·여·531동)씨는 “야구장 소음 때문에 식탁에서조차 ‘뭐?’라고 소리쳐야 식탁 맞은편 식구에게 얘기가 전달된다”며 “전에는 ‘왜 엄마가 말하는데 대답 안 하느냐’고 오해했다가 애랑 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TV 볼륨은 평소 17~20 정도인데 야구경기가 있는 날은 45까지 올린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학생을 둔 가족은 ‘야구 피난’까지 간다. 부모들이 인근 독서실 등 소음이 없는 곳으로 자녀를 피신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경기가 끝나는 밤 10시쯤 집으로 돌아온다. 두 아들(중 3·초 6)을 둔 초등학교 교사 김모(45·512동 거주)씨는 “처음엔 공부에 집중하면 저 정도 소음은 참을 수 있다고 아이를 다그쳤는데 정작 나도 수업 준비에 집중할 수가 없더라”며 “경기가 있는 날은 애들을 독서실(월 5만원)에 보낸다”고 했다. 그는 “아늑한 집을 놔두고 어두컴컴하고 시설도 안 좋은 곳에 애들을 강제로 보내야 한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며 “정보가 부족해 이곳에 이사온 게 후회된다”고 덧붙였다.

 야구장 조명탑에서 비추는 강한 빛도 문제다. 일부 가정에서는 이 빛을 차단하기 위해 블라인드를 설치하기도 했다. 한 주민은 “연장전으로 밤 11, 12시까지 경기가 진행되는 날에는 빛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아이의 시험기간과 맞물릴 때는 정말 어디에 화풀이를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화가 난다”고 말했다.

 530동 13층에 거주하는 김모(55)씨는 “층간소음으로 살인이 난다는데 나도 정말 총만 있으면 쏘고 싶을 정도”라며 “왜 다른 사람의 오락을 위해 우리가 희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김씨 둘째 딸은 야구장 소음 때문에 작업을 할 수가 없다며 결국 신림동에 오피스텔을 얻어 따로 살고 있다.

 넥센이 목동구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경기장 소음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새삼 불만의 목소리가 커졌을까.

 올해 주민들의 불만과 불안이 고조된 것은 넥센이 올해 말 완공하는 고척동 돔 구장에 이전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넥센의 한 관계자는 “교통 접근성이 나쁘고 임대료도 목동구장보다 너무 비싸 이전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목동의 한 주민은 “넥센이 2010년만 해도 고척동 돔 구장 완공 후 이전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참고 기다린 것”이라며 “당초 약속과 달리 이전하지 않겠다고 하니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제 서울시에 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0억원을 들여 고척동 돔 구장을 건립 중이다. 완공까지는 5개월 남았다. 서울시는 당초 서울 연고 프로야구팀 중 한 팀을 이전시키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재까지 서울 연고 3개팀(두산·LG·넥센)은 모두 거부 의사를 표명한 상태다. 서울시도 “이전시키겠다”는 입장만 표명할 뿐 현재까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똑같은 목동이어도 다른 단지 주민들은 5단지와는 온도 차가 있었다. 6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여기서도 경기장 소리가 들리는데 그렇다고 구단을 이전시킬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며 “솔직히 넥센이 있어서 이곳에 있는 다른 상업시설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글=유성운·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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