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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인 스마트 무인기, 2년째 창고 방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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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호 14면

1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스마트 무인기 ‘TR-100’.

2011년 9월 17일 전남 고흥 항공센터. 길이 5m, 폭 7m인 신형 비행체(사진)가 시동을 걸었다. 날개는 비행기지만 양 끝에 수직으로 달린 프로펠러(로터 시스템) 때문에 헬리콥터 같기도 한 복합 비행체다. 시동이 걸리자 프로펠러가 돌면서 기체가 수직 상승하더니 고도 200m에서 로터 시스템을 수평으로 기울여(tilt) 비행기처럼 날기 시작했다. 40초 만의 일이다. 착륙 때는 로터를 수직으로 세웠다.

한국 무인기 개발 어디까지 왔나

세계 최초의 무인 틸트로터, 즉 무인 수직이착륙기인 TR-100을 시현하는 현장이다. 수직 이착륙 기능만 보면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정부가 스마트 무인기로 부르는 이 비행체는 2002년 21세기 항공 분야 프론티어 사업으로 선정돼 10년간 1000억원의 지원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전주의 개발 참여 회사에 들러 관심을 표시했던 대형 국가 프로젝트였다.

당시 스마트 무인기 개발단을 이끌었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김재무 단장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헬리콥터 세미나장에서 시현 성공 보고를 받고 미래가 열릴 것이란 기대로 부풀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스마트 무인기의 미래가 지금처럼 닫힐 줄 그는 생각도 못했다.

그로부터 1년9개월 뒤인 지난달 13일 서울 방위사업청 회의실에선 이용걸 청장이 주재하는 ‘국방산업발전실무협의회’가 열렸다. 항우연의 김재무 책임연구위원은 ‘스마트 무인기의 국방 분야 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전처럼 단장 신분이 아니었다. 사업단은 지난해 9월 문을 닫았다. 김 위원은 대전 항우연의 예전 단장실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200여 직원으로 붐비던 사무실들은 텅 비었다. 12명만 ‘무인기 체계실’에 남았다. 1000억원을 들여 개발된 시제기 3대는 고흥의 창고에서 잠을 자고 월 1회 ‘녹슬지 않게’ 비행만 시킨다. 김 전 단장은 ‘사업 성과를 5년간 활용한다’는 규정에 따라 직책·사업비 지원 없이 ‘나 홀로’ 뛴다.

2 대한항공이 개발한 중고도 무인정찰기 ‘KUS-9’. 3 2007년 3월 전주과학산업단지를 찾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스마트 무인기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박 대통령도 2007년에 관심 보여
김 전 단장이 지난달 방사청 발표를 맡게 된 것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권해서였다. 매년 국방부와 국방산업발전회의를 하는 산업부는 올해 초 국방부에 “민·군이 틸트로터 분야에서 기술 협력을 하자”고 제안한 뒤 김 전 단장에겐 발표를 요청했다. 회의엔 국무총리실, 미래창조과학부, 중소기업청, 외교부의 국·과장이 왔다. 외교부는 “도와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국방부와 방사청 반응은 무덤덤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다른 관계자는 “국방부 참석자는 ‘기술은 좋은데 당장은 소요가 없다. 찾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방사청장은 “국방부를 잘 설득하라”고 충고했다. 국방부·방사청의 그런 태도는 뜻밖이었다.

군과 업계 관계자는 “항우연이 2008년 군용 스마트 무인기인 TR-60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군이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에 따르면 항우연은 2007년 스마트 무인기의 축소형인 TR-40의 기술 시연을 했다. 이 자리엔 합동참모본부(합참) 최고위급 관계자가 참석했고 그는 관심을 보인 뒤 군에 활용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군에 정찰기가 필요한데 당시는 군단급이 사용하는 활주로용 정찰기만 있고 활주로가 없는 대부분 사단 이하 부대엔 정찰기가 없어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이에 2008년 항우연과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각각 TR-60용 기체와 지상조정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이렇게 스마트 무인기는 민수용 TR-100과 군수용 TR-60으로 분화됐다. 정부는 스마트 무인기 개발을 지지했다. 2009년 9월 당시 지식경제부는 “무인기는 폭발적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블루오션으로 우리 정보기술(IT)을 활용하면 세계를 주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방사청도 2010년 1월 ‘대한민국항공산업 G7 도약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World Leader급 항공 핵심기술 후보군’으로 무인기를 꼽고 이를 ‘전략 핵심’ 사안으로 정했다. 지경부는 2011년에도 “스마트 무인기가 군용뿐 아니라 민수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실제 움직임은 달랐다. 항우연은 2011년과 2012년 국토부에 민수용 스마트 무인기의 사업 예비 타당성 검토를 신청했다. 국토부는 이 사업을 1순위로 선정, 미래창조과학부로 제출했다. 결정되면 무인기 개발의 발전 방향이 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탈락했다. 국토부 항공산업과의 관계자는 “우리의 선도 기술을 실용화해야 하는데 지난해 우주 발사체를 밀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 선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오는 12월 3차 타당성 검토를 신청할 예정이다.

문제는 미국·이탈리아·이스라엘·일본·중국 같은 나라들의 추격이다. 일본은 틸트로터 4개짜리를 만들고 있다. 원천 기술이 있는 미국 벨사는 현재 유인 틸트로터인 V-22를 200대 이상 만들었다. 언제 무인기로 전환할지 모른다. 그래서 김 전 단장은 고군분투한다. 지난달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서 열린 제50회 파리 에어쇼에서 안면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업자를 만나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이 업자가 “한국에선 어떻게 활용되느냐”라고 물었을 때 김 전 단장은 곤혹스러웠다.

군수용 TR-60의 처지도 어둡다. 현재 군단급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무인정찰기 송골매가 배치돼 있다. 차기 군단·사단급 무인 전술급 정찰기와 관련해 KAI와 대한항공이 산업부 예산을 받아 기술 개발 중이다.

한국은 KAI가 2009년엔 사단급 무인기인 Night Intruder-100 개발을 완료하고 대한항공이 2007년 운용반경 40㎞의 KUS-7을, 2009년 운용반경 80㎞의 KUS-9을 잇따라 선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운항 거리 200㎞인 전술급은 한국 기술이 선진국의 90% 수준이라 해볼 만하다”며 “중동·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는 미국·이스라엘 제품을 사지 않아 한국이 노릴 만하며 중남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美, 3년 뒤 무인기 자유 운항 목표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정부 내 기류는 엇박자다. 2008년부터 항우연과 ADD가 공동개발하던 TR-60사업에 대해 방위산업추진위원회는 2010년 돌연 ‘국가 주도가 아닌 업체 주도로 한다’는 결정을 했다. 그래서 항우연은 개발 중이었던 TR-100 기술의 60%를 대한항공에 제공한 뒤 손을 뗐다. TR-60은 현재 대한항공이 개발 중이다. 그럼에도 노대래 방사청장은 2011년과 2012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2012년 계속 이 사업에 관심을 표명했다. 올해 초에도 항우연은 합참 간부를 상대로 스마트 무인기의 장점을 설명했으며 반응은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단장도 수시로 군에 “북방한계선(NLL) 감시도 할 수 있고 야간 비행도 되며 해군 선박에도 실을 수 있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진행된 사업은 지난달 연구 과제로 결정된 것뿐이다. 해군도 “관심이 없다”고 했고, 공군도 “개념 연구 정도를 할 뿐”이라고 했다. 군은 정찰기의 해외 구매에 관심이 더 커 보인다.

결국 1000억원이 투자되고, 세계 제1의 기술을 보유한 스마트 무인기의 미래는 민·군 어디에도 열려 있지 않다. 관심도 정책도 제도도 없다. 무인기는 스마트하게 개발했지만 무인기 정책은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세계의 흐름은 다르다. 국제 통계 전문기관인 틸 그룹에 따르면 세계 무인기 시장은 올해 66억 달러에서 2022년 114억 달러로 커진다. 10년간 누적 시장 규모가 891억 달러다. 마케팅 정보 회사인 Frost&Sullivan도 2011~2020년 세계 군용 무인기 시장의 누적 매출을 614억 달러로 잡는다. 지경부도 2011년 세계 무인기 시장이 2010년 90억 달러에서 2020년 190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 시장에선 이미 경쟁이 뜨겁다. 선두는 역시 미국이다.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의 장두현 전문위원이 올해 발표한 ‘무인항공기의 세계 시장 동향과 전망’에 따르면 무인기 시장에서 미국은 10년간 6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민·군 무인기 시장을 선도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1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9월 말까지 무인기가 유인기와 함께 공역(空域)을 비행할 수 있게 법안을 마련하라는 지시와 함께 예산 110억 달러를 책정했다. 3㎏ 이하 무인기 운항 규제는 지난해 풀렸고 25㎏급은 내년 상반기에 풀린다. 2015년 9월엔 전 기종이 자유 운항할 수 있게 된다. 업계 전문가는 “업계 표준이 마련되면 미국이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은 그런 제도가 없어 투자가 안 되고 시장도 형성되지 않고 기술 발전이 안 되는 상황이 악순환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또 2000년부터 2년마다 민·군 무인기의 기술 발전 추세, 수요 변화를 분석하는 자료를 공개하며 본격적인 육성 정책을 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무인기 현황을 수집하는 정부 기관은 군뿐인데 그나마 미국과 달리 비밀로 취급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무인기 시장과 관련, 한국항공대학 박상범 교수는 2011년 7월 ‘스마트 무인기 기술 개발의 경제적·기술적 파급 효과 분석’이란 발표문에서 “국내시장이 2009년부터 연평균 33% 증가하고 2018년 군수용 1257대, 민간용 584대로 총 1841대의 수요가 발생할 것이다. 산업 파급 효과는 2조2729억원, 기술 파급 효과는 9조6083억원 등 11조8812억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스마트 무인기의 경우 사업 추진 시 13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 4조2000억원의 소득 창출 효과, 7만 명의 고용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2012년 10월엔 무인기의 탑재 중량을 500㎏으로 제한한 한·미 미사일 협정도 개정돼 탑재중량 2.5t급(연료+탑재무장)까지 개발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산업부 자동차항공과의 담당자인 박성민 사무관은 “무인기를 지원하지만 구체적인 미래정책은 없다. 재투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공역 문제나 운항체계의 정비 없이는 운항이 불가능한데 이는 국토부의 업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방사청·산업부는 스마트 무인기를 민·군 협력 과제로 하는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 상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그럼에도 미래가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무인기 시장은 막 열리고 있으며 어떤 분야에선 한국이 세계 1~2위다. 그래서 우리가 선도할 수 있는 분야이며 IT 융합형인 무인기 사업은 창조경제에 딱 맞는 품목”이라며 “우물쭈물하면 한국은 2~3년 사이에 경쟁력을 잃고 스마트 무인기 같은 독보적인 기술은 사장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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