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청와대와 입맞추기 급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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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진실 해명 의지는 여전히 없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를 의식하고 있는 듯 '남북 정상회담 대가가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5억달러 다 보냈나=김윤규 사장은 "5억달러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현대상선 등)남이 준 것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발표한 5억달러 이외에도 더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몽헌 회장도 현대상선을 통해 건네진 2억달러 이외의 3억달러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대답을 피했다.

청와대 발표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는 다만 7대 사업 승인 과정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金사장은 "정부의 사업승인을 받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사업권에 대해 확인을 받았다"며 "그러나 이후 통일부에 사업보고를 했는데도 너무 방대한 규모 탓인지 (승인을) 주저 주저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현대가 통일부를 제쳐두고 청와대.국정원과 직접 7대 사업을 논의했음을 암시한다. 통일부를 배제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밝혀지지 않은 3억달러 송금=현대는 현대상선 2억달러만 현재 대북 송금을 시인하고 있다. 현대건설.하이닉스반도체를 통해 보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대꾸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대북 송금 출처는 물론 송금 경로조차 부정도 시인도 하지않고 있는 상태다.

◇남북정상회담 앞두고 송금한 이유=金사장은 "현대와 정부가 정상회담을 돈 주고 성사시켰다고 하는데 북한을 아는 사람이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남북 정상의 만남 덕분에 우리 사업이 공개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효과는 얻었다"며 여운을 남겼다.

현대 입장에선 남북 정상회담의 성격을 일종의 보험성 이벤트로 생각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정상회담을 누가 처음 제의했느냐에 대해서도 청와대나 현대 측의 구체적 해명이 없다.

◇정부와는 관계가 없나=현대는 최근까지 대북 송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대북송금에 대해 아예 잡아떼기까지 했다. 게다가 현대상선의 4천억원 대출에 대해 "북한에 간 게 아니라 자금난에 빠진 계열사에 썼다"고 주장했었다.

청와대도 대북 송금이 어떤 돈으로 어떻게 보냈는지는 일절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김충식 전 사장이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4천억원은 정부가 쓴 돈"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 가운데 2천2백35억원(2억달러)이 북한에 송금된 것만 확인해주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니냐는 의혹을 벗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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