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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비인기 부위, 안 되겠소 '한우 과자'로 변해보겠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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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생긴 건 꼭 감자칩이다. 노란색의 둥근 모양. 입에 넣어 씹어보니 제법 바삭바삭하다. 일본과자 센베이(煎餠) 맛과 비슷하다. 18일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이 내놓은 ‘한우 고기과자’ 얘기다. 하지만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어봐도 쇠고기의 흔적은 느낄 수 없다. 성분을 물어보니 한우 고기 20%에 나머지 80%는 밀가루와 설탕·소금 등이 들어갔단다. 그간 콩단백질로 고기를 만든 ‘콩고기’ 등 식품의 ‘경계선’을 넘은 제품은 끊임없이 등장해 왔다. 하지만 쇠고기, 그것도 비싸서 아무나 못 먹는다는 한우로 만든 과자는 처음이다. 과자는 일반적으로 밀가루 같은,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곡물로 만든다. 축산과학원 홍성구 박사는 “한우 저지방 부위 소비 촉진의 하나로 고기에서 간단하게 단백질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이용해 고기과자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소비자 선호도 양지 68%, 우둔은 24%

18일 경기도 수원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직원들이 한우로 만든 ‘고기 과자’를 맛보고 있다. 고기 과자는 한우 저지방 부위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과자다. [수원=뉴시스]

 한우가 어쩌다 과자로까지 변신해야 했을까. 어렵던 시절엔 부잣집에서도 잔칫날이나 먹을 수 있었던 게 쇠고기다. 하지만 풍족해진 21세기엔 상황이 달라졌다. 한우 한 마리를 잡으면 특수부위와 등심·안심·양지 등은 비싼 값에 잘 팔리지만 우둔(소 엉덩이 안쪽 살) 등 소비자가 외면하는 부위도 적지 않다. 지방 함량이 아주 낮아 식감과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이 2011년 쇠고기 부위별 구매비율을 조사해봤다. 국거리로 흔히 쓰는 양지의 선호도가 68.1%로 가장 높았다. 등심은 49.8%, 갈비 36.1%, 우둔 24.2%, 앞다리살 23.2%로 저지방 부위인 우둔이나 앞다리살 구매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선호도는 곧 가격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내놓은 ‘2012년 한우 부위별 평균 도매가격’을 보면 최고등급(1++) 1㎏당 가격이 특수부위(토시살·차돌박이·제비추리) 7만902원, 등심 6만5093원, 안심 5만4196원에 이른다. 반면 우둔(1만8200원)·목심(1만8603원)·사태(1만6894원) 등은 1만원대에 불과하다. 뼈 부위인 사골·꼬리·잡뼈 등은 1만원 미만이다.

비인기 부위 재고 쌓여 축산업 발전 방해

 이 때문에 등심·안심과 같은 인기 부위는 미국과 호주 등에서 외국산을 많이 수입한다. 반면 비인기 한우 부위는 국내 재고가 나날이 쌓이고 있다. 홍성구 부장은 “그간 한우 부위별 선호도 차이가 크게 나 우둔 등 일부 부위 재고량이 계속 늘어 축산업 발전에 문제가 돼 왔다”고 말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고깃집에서 주로 찾는 구이용 등심·안심은 어느 정도 소비되지만 가정에서 주로 먹는 장조림이나 불고기 재료인 우둔과 설도 등은 판매가 부진하다.

 이는 쉽게 풀릴 상황이 아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식용으로 쓰이는 한우와 육우(젖소 수컷)의 국내 사육 두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공급 과잉 상태에 빠진 것이다. 한우와 육우 사육두수는 2010년 75만2000두에서 지난해 97만 두까지 치솟았다. 한우·육우 고기 생산량 역시 2010년 15만2095t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9만5173t까지 늘었다. 하지만 공급량에 비해 소비량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2010년 8.8㎏에서 2011년 10.1㎏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9.8㎏으로 되레 줄었다. 2년간 증가율로 봐도 11.4%에 불과하다.

“우둔 이용한 과자, 수익성 60% 높아”

 이 때문에 등장한 게 한우 고기과자다. 도매가격 기준 100g당 1800원에 판매되는 한우 우둔 부위를 이용해 과자를 만들면 8220원에 팔 수 있어 가공비용을 빼고도 2956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같은 중량을 그냥 고기로 파는 것보다 수익성이 60% 높아진다는 게 축산과학원의 분석이다.

 축산과학원 강근호 연구사는 “고기 내 단백질은 사람 몸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을 골고루 함유하고 있어 다른 식품 단백질보다 우수하다”며 “밥도 고기도 싫어하고 과자만 찾는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간식”이라고 말했다. 라이신과 류신 등 필수 아미노산 함량을 기준으로 단백질의 품질을 100점 만점으로 비교해보면 고기 단백질(83점)이 가장 우수하다. 다음으로 우유(78점)-콩(73점)-곡물(72점) 순이다. 단백질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한우 과자 한 조각에 고기 1g 먹는 셈

 고기과자는 어떻게 만들까. 과자 하나에 한우 고기 20%가 들어간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기 내의 단백질을 추출해 원료로 쓴다. 고기는 약 70% 이상의 수분과 단백질·지방, 그리고 소량의 탄수화물과 비타민·미네랄 등으로 이뤄져 있다. 단백질 중에서도 우리 몸의 근육을 형성하는 근원섬유 단백질만을 추출해 과자에 넣는다. 축산과학원은 근원섬유 단백질이 소금에 녹아 풀어지는 특성을 이용해 소금물과 고기를 함께 믹서에 갈고 여과해 원심분리하는 방식으로 근원섬유 단백질을 추출했다.

 강근호 연구사는 “추출한 단백질에 밀가루와 소금·설탕 등을 넣고 혼합해 숙성과 건조 과정을 거치면 고기과자가 완성된다”며 “고기과자 1개(5g)를 먹는 것은 1g 정도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고, 그 안에는 고기 단백질이 0.1g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21세기 방식의 소 활용법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2010년 축산 부산물인 우지(牛脂·쇠기름)를 바이오디젤 연료로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쇠기름을 녹여 추출한 글리세린이 바이오디젤의 원료다. 경유 80%와 쇠기름에서 추출한 바이오디젤 20%를 섞은 연료를 농업용 난방 온풍기에 넣어 작동하는 실험도 했다. 동물성 기름은 도축장에서 44만t, 가죽 제조 과정에서 10만t 등 국내에서 매년 50만t 이상 나온다. 이스라엘에서는 지난해 소 1만4000마리의 분뇨를 활용, 4㎿급의 바이오가스 발전소를 준공하기도 했다.

세종=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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