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합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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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대구고법 수석부장간사 김모씨의 사표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사법부가 행정부처럼 명령계통화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명령계통」이란 결국 재판에까지 그 명령의 손을 뻗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김판사의 그 다음 발언이 중요하다.『사법부내의 인사관리가 감독관 개인의 감정이나 온갖 연줄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충고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사법권의 독립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그런 원인뿐만이 아닐 것 같다. 행정부의 비대증, 의회의 약화, 게다가 빈약한 대우 문제등이 얽히고 섞인 속에 이루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사법부가 기우뚱한 다리를 펴리라고는 쉽게 생각되지 않는다.
우선 김판사의 말마따나「연줄인사」는 사법부의 관료화를 촉진하는 제일 큰 원인이다. 연(연)이 연줄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연줄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누구도 사법부에 다리를 놓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물론 사법부가 체통을 차리는 일과도 관계가 깊다. 권력의 체제가 평형을 이룰 때나 그것은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사법권의 독립은 결국 그 요인들을 소급할수록 어려운 문제들로 확대된다. 김판사는 실로 그 엄청난 바위에 계란을 던진 폭이다.
일전, 일본의「삽보로」지방법원에서 일어났던 지법원장의 쪽지사건은 계속 그 나라에서 하나의 사회문제로「쿨로스업」되고 있다. 일본의 사법부가 법의낙원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김판사의 경우를 놓고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민대법원장은 취임제일성에서 인사관리의 합리화를 다짐했다.
그는 사법권독립의 제일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이른바 법관들의「로테이션」근무가 더러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를 우리는 보고 있다. 민대법원장은 우선 그런 전통위에서 독립의 제이보, 제삼보를 내디뎌야 할 것이다. 인사의 합리화야말로 법관이 정실 아닌 법과 양심에 구속되는 제1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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