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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형식만의 해명, 특검으로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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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송금' 해명은 그 자신의 종전 논리를 뒤엎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켰다.

대통령과 여권이 그런 형식만의 해명으로 이 사태를 매듭지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면 잘못이다. 대통령과 참모의 해명을 듣고 보니 더더욱 특검을 통한 진실규명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우선 이 사안에 대한 金대통령의 역할 문제다. 그는 지난달 30일 이 사안을 '통치권적 결단'의 사항으로 규정, 법 적용의 부적절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어제 "(2000년 정상회담 준비기간에)현대관계보고를 잠깐 들은 기억이 있다"며 "큰 이의를 달지 않고 수용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스스로 이 사안에 사전에 개입한 적이 없고 사후에 이를 수용한 정도라는 뜻이다. 도대체 통치권 운운할 대상이 아님을 자인한 셈이다.

당시 국정원장으로 현대상선의 2억달러 환전 편의를 시인한 임동원 대통령특보도 이 사안을 '민간기업의 자체적인 판단에 따른 상업적 거래'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여기에 대통령이 개입한 일이 별로 없었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왜 지난해 9월 이 의혹이 터졌을 때 그 처럼 사실 은폐에 급급했어야 했는가. 당시 여권은 이 의혹을 부인하는 선을 넘어 '신북풍조작'이라니 "막가파식 조작극을 당장 중단하라"고 극언했었다.

따라서 대통령과 참모가 지금까지의 '통치행위론'을 스스로 뒤집으면서 국익론에만 매달리는 것은 뭔가 더 큰 것을 숨기고 있다는 의혹만 키울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은 오히려 민간기업의 대북사업을 위법적으로 방조해 이처럼 국가질서를 문란시키고 국론분열을 야기한 인사와 기관에 대한 책임규명을 하는 것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해야 할 책무다.

金대통령이 지금 와서 "이제 이것이 공개적으로 문제가 된 이상 정부는 진상을 밝혀야 하고 모든 책임은 제가 져야 한다"는 말은 국민을 업수이 여기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林특보는 현대 측의 환전 편의 요청에 대해 가능성 여부만 검토토록 지시했을 뿐 그 후 어떻게 됐는지를 몰랐으며, 이번에야 알게됐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측은 또 대북 7대사업의 독점 대가로 5억달러를 지불키로 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시인하고는 나머지 3억달러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 없다'면서 현대에 알아보라는 식으로 넘겼다.

청와대가 이 사안의 핵심 사항의 진전에 대해 그 당시에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는 말은 무책임과 무성의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해 9월의 거짓말은 차치하고 이제 와서 국민에게 설명한다면서도 핵심사안을 모르겠다니 말이 되는가.

그러니까 대통령과 林특보의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는 호소는 전혀 설득력이 없고 '면피성 형식'일 뿐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대통령과 林특보의 해명 결과는 현대 쪽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대북송금과 남북 정상회담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당시 현대상선의 김충식 사장은 "우리가 갚을 돈이 아니다"고 왜 단언했으며, 정부와 여당은 진실 은폐에만 급급했는가. 현대도 진실을 밝혀야 하지만 현대 지원을 둘러싼 정경유착 가능성 등 정부가 밝혀야 할 의문은 더 많다.

따라서 특검만이 진실규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우리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