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인터뷰] 가수 이정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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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노래는 일이 아니라 놀이예요. 무대에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까 하고 궁리하거든요." 1999년 '와''바꿔'등으로 테크노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가수 이정현(23)이 이번엔 대형 붓을 들고 한류(韓流)열풍을 이끌 태세다.

사진부터 찍자는 기자의 말에 그는 들고 있던 손가방을 열었다. 예쁜 바비 인형 그림이 달린 자그마한 가방에서 거울과 화장품을 꺼내 직접 화장을 시작했다. 조금만 유명해지면 코디네이터가 모든 것을 챙겨주는 이 바닥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웬만한 건 제가 직접 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요."

노래뿐 아니라 부채.손가락 마이크.천사의 날개.이집트풍 의상.바비인형 등 다양한 소도구를 활용한 무대 연출에도 그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됐다.

"노래를 만들기 전부터 (작곡가에게)이번에는 이런 스타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그리고 그 컨셉트에 맞는 소도구를 생각하죠. 팬들을 의식해 한 일이었다면 팬들이 먼저 지겨워 하셨을 거예요."

똑소리 나는 말투다. 얼마 전 4집 앨범을 내놓고 정글 패션으로 타이틀곡 '아리아리'를 부르며 무대를 달구더니 이번 '달아 달아'에서는 자기 키의 절반만한 붓을 쥐고 한삼을 낀 채 신명나는 봉산탈춤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와'가 한국적이지 못하고 동양적이었던 것이 항상 아쉬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대금과 가야금 곡조를 넣고, 연지곤지도 찍고, 옷에 노리개도 달았어요. 한국적인 정서를 꼭 담아보고 싶었거든요."

이렇게 마음먹은 신곡 홍보를 요즘 일정에 쫓겨 맘껏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 2주마다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TV의 20부작 드라마 '미려심영(美麗心靈)'을 촬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당 1천5백만원으로 총 개런티만 3억원인 초특급대우다. 이미 알음알음으로 퍼져 중화권을 석권하고 있는 노래실력에 연기력까지 갖춘 그녀의 잠재력을 높이 샀다는 얘기다.

"원작에서는 무용수로 성공하지만 저를 생각해 톱가수가 되는 걸로 대본을 고쳤대요. 주인공 정혜는 답답할 정도로 착한 역할이에요. 하루 20시간 정도 촬영하는데 우는 장면이 많아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울기만 해서 눈물이 말랐을 정도였죠."

오는 6월 드라마가 중국.대만.홍콩.베트남 등 5개국에서 동시 방영될 즈음 중국 전역을 도는 콘서트를 벌여 '한류(韓流)'의 선봉에 서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낸다.

이정현의 또 다른 욕심은 연기. 96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에서 열여섯의 나이로 처음 대중과 만난 그녀는 "본격적인 연기를 너무 하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드라마는 집중하기가 힘들어서 싫어요.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기는 하는데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어요. 친분이 있는 감독님들도 '너한테 평범한 역이 어울리냐'고만 하시죠. 그래서 꾹 참고 기다리는 중이에요."

그녀는 '꾹 참고'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대학(중앙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는 말도 슬쩍 흘리면서. 이 재기발랄한 스물세살 처녀가 앞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궁금하다.

글=정형모,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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