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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퇴임 111일만에, 억대 금품 혐의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황보건설 황보연 대표로부터 1억7000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0일 밤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원 전 원장이 서울중앙지검에서 서울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원세훈(62) 전 국정원장이 국가 정보기관 수장직에서 물러나 구속 수감된 피의자 신분이 되기까지는 정확히 111일이 걸렸다. 전직 국정원장 중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다.

애초 검찰의 목표는 국정원 특별수사팀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 기소 시점(6월 14일) 이전에 개인 비리 혐의를 입증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으로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지를 두고 검찰과 법무부의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중수부 폐지 이후 검찰 내 최고 화력으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매달려 금품 수수 혐의를 신속히 캐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지난 5월 말 서울 중구 남산동 황보건설 본사 압수수색으로 개시된 수사는 구속영장 청구까지 한 달 보름 가까이 소요됐다.

이는 원세훈 전 원장이 재임 시절 철저히 ‘그림자 동선’을 유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조사결과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출범 이후 꾸준히 기록해왔던 원장 차량 운행일지나 경호팀의 경호일지를 못 쓰게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원 전 원장이 자신의 동선 노출에 노이로제 반응을 보였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원세훈 전 원장은 황 대표를 매번 서울 강남소재 한 호텔 밀실에서 만났다고 한다. 방에서 단둘이 만나 돈을 받은 뒤 식당으로 내려가 홈플러스 이승한(67) 회장 등 지인과 합석해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밀행성이 보장되는 국정원장의 3~4년 전 발자취를 추적하는 것은 수사팀의 가장 큰 난관이었다.

검찰은 단편적인 증거를 종합한 끝에 원 전 원장의 국정원 정문 출입기록과 황 대표 계좌의 현금 인출 시간이 일치한 점 등을 발견해냈다.수사기록 검토와 피의자 심문을 마친 법원은 10일 원 전 원장의 구속수사 필요성을 인정했다. 수사팀을 이끈 여환섭(45)부장검사는 검찰 내 대표적 특수통으로 꼽힌다. 지난해 중수부에서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수사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차관을 구속기소한 데 이어 이명박 정부의 실세를 한명 더 구속하게 됐다.

이날 오전 10시 15분쯤 은색 소나타를 타고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에 모습을 드러낸 원세훈 전 원장은 ‘억대 현금을 받은 것이 사실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황 대표에게서 받은 선물에 대가성이 없었느냐’고 묻자 “그냥 생일선물이다. 그땐 (청탁을) 몰랐다”고 말했다. 검은색 양복에 금색 넥타이 차림으로 일주일 전(4일) 검찰 소환 조사 때보다 굳은 표정이었다.

김기환·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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