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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빠진 '금융소비자리포트' … 업계 눈치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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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며 금융감독원이 의욕적으로 시작한 금융소비자리포트가 용두사미가 됐다.

 금융감독원은 10일 ‘서민금융’을 주제로 한 금융소비자리포트 3호를 발간했다. ‘서민금융지원제도 및 금융사기 예방법’이란 제목으로 새희망홀씨·햇살론·미소금융 등 3대 서민금융 상품의 주 이용층과 지원자격·대출한도 등을 다뤘다. 대표적인 채무조정 제도인 국민행복기금,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용회복제도, 법원의 개인회생·파산도 설명했다. 대학생 금융사기 피해 예방법과 피싱 사기 대처법도 실렸다.

 오순명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금융지식이 별로 없는 50대 서민층이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잡지로 만들었다”며 “다양한 이미지와 사례 설명을 통해 소비자가 금융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약 4000부를 발간해 지방자치단체 민원실과 병원·보건소 대기실에 배포할 계획이다. 이전까지는 금감원 홈페이지에 리포트를 올리고 내부용으로 200여 부의 책자를 만드는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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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런 변화에 대한 금감원 안팎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리포트를 내는 취지도, 정보도 사라진 맥 빠진 보고서”라고 혹평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지적된다.

 우선 분석 대상이 금융 상품에서 정책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나온 리포트 1호와 2호는 각각 은행·증권·보험사들이 파는 연금저축과 캐피털사의 자동차금융을 다뤘다. 소비자들이 많이 이용하면서도 상품 간 비교가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선택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였다. 이에 비해 이번 리포트는 정부의 정책금융인 서민금융을 다뤘다. 금융회사들의 반발에 밀려 민감하지 않은 주제를 다룬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1·2호 리포트가 나온 뒤 “영업에 피해가 크다”는 금융회사들의 민원이 금감원에 상당수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의식해 금융소비자리포트의 형태를 바꾸려 한다는 말이 금감원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결국 금감원은 지난달 초 “금융소비자리포트를 그동안의 정책보고서 형식에서 금융가이드 형식으로 개편한다”며 3편 주제를 서민금융으로 정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1, 2호가 발간될 때는 금융회사 담당 임원들이 상당히 긴장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분위기가 전혀 없었다”며 “서민금융은 대부분 은행들이 사회공헌 활동으로 자랑하는 사업이라 이런 리포트는 은행에서도 반길 만하다”고 말했다.

 비교·분석이 사라진 건 당연한 결과다. 정책금융은 공급자가 누구든 정부가 정한 조건으로 대상자들에게 주어진다. 상품별, 유통채널별로 분석할 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에 발간된 리포트 3호는 서민금융 상품과 채무조정제도의 문제점 분석이나 해법 제시보다는 제도를 자세히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 금감원은 앞으로도 정책금융을 다룬 리포트를 계속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의 시각에서 소비자 권익을 보호한다는 당시의 발간 취지가 정책 홍보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번에 나온 리포트는 질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의 콘텐트”라며 “인터넷 검색 한 번만 해도 다 나오는 정보를 잡지로 만들어 수천 부씩 뿌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또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정부나 금감원이 홍보하고 싶은 내용을 정리한 듯하다”며 “소비자 편에서 금융상품을 비교 생산하는 기능이 없다면 금융소비자리포트가 나올 필요성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태경 기자

금융소비자리포트 지난해 5월 탄생한 금융소비자보호처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됐다. 지난해 10월 처음 나온 1호 연금저축 편에서는 저축·펀드·보험 등 각 금융권역별 연금저축의 수익률과 수수료를 비교했고, 올해 1월 발간된 2호에서는 자동차할부대출의 금리를 비교했다. 이를 통해 업계의 연금저축·자동차금융 수수료 인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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