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更上一層樓[갱상일층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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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인들은 시(詩)나 성어(成語)를 쓰기 좋아한다. 때로는 풀어 이야기하는 것보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시와 성어를 이용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도 여러 시와 성어가 사용되며 양국 간에 큰 화제를 낳았다.

박 대통령이 매 경우에 맞는 말을 준비했다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한·중 관계 발전에 포인트를 맞췄다. 우선 우리 측에선 이번 박 대통령의 방중을 ‘심신지려(心信之旅)’라 이름 지었다. ‘마음과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이라는 뜻의 새로운 조어(造語)다.

방중 첫날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겨냥해 공자(孔子)의 말을 동원했다. “처음엔 사람의 말을 듣고 행실을 믿었으나 이젠 말을 듣고도 행실을 살핀다(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촉구한 것이다.

둘째 날 박 대통령은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의 연설 도중 중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먼저 친구가 되라(先做朋友 後做生意)’를 중국어로 말해 박수를 받았다. 셋째 날 칭화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선 관자(管子)의 말을 중국어로 인용해 주목을 끌었다.

바로 “한 해의 계획으론 곡식을 심는 것보다 나은 게 없고(一年之計 莫如樹谷) 십 년의 계획으론 나무를 심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十年之計 莫如樹木). 백 년의 계획으론 사람을 심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百年之計 莫如樹人)”는 대목이다.

이에 반해 시진핑 주석은 한·중 양국의 돈독함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최치원의 시 범해(泛海)에 나오는 “푸른 바다에 배를 띄우니 긴 바람이 만리를 통하네(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를 인용했다.

또 시진핑은 한·중 관계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의 시구가 담긴 서예작품을 박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작품은 당(唐)대의 시인 왕지환(王之渙)이 쓴 ‘관작루에 올라(登觀雀樓)’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황하는 바다로 흐른다. 천리를 내다보려는 자는 한 계단 더 오르라(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한·중 양국의 발전이 한 단계 더 성숙되기를 기원하는 바람을 담았다. 모쪼록 그리 되기를 바랄 뿐이다. 두 나라가 영원히 이웃해 살 수밖에 없는 운명체이기 때문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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