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갈 길 먼 한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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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호 31면

한류(Korean wave)가 진정으로 세계를 휩쓰는 문화의 파도일까? 혹시 한류를 위해 쏟아부은 엄청난 노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들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류의 성공을 자축하며 한국 문화가 세계 널리 펼쳐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물론 K팝이나 한국 드라마는 남미부터 중동·유럽·동남아·북미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에도 싸이나 드라마 ‘대장금’이 알려져 있을 정도다.

 한국인들은 프라이드가 높은 민족이다. 한때 쇄국정책을 펼치기도 했지만 한국을 세계에 알리려 하는 노력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난 감히 이렇게 말한다. 한류와 한국이 세계 곳곳에 알려지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고. 아무리 K팝 그룹이 멋지다고 해도, 재벌이 막대한 투자를 하고 비공식적 문화대사들이 곳곳에서 열심히 활동을 한다고 해도 아직 갈 길은 멀다. 물론 각종 통계수치는 장밋빛 결과를 전해 주고 있다. 한국제 고가 전자제품과 자동차, 음반의 해외 수출량은 놀라울 정도다. 하다못해 이태원에선 싸이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양말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도 해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Korea’에서 살고 있다고 하면 열에 다섯은 이렇게 질문한다. “코리아? 북한이에요? 남한이에요?”
 한국 문화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한류가 진정 글로벌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런 질문은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내겐 한국과 한류의 글로벌화를 측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시험지와 같은 이 질문을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받고 있다. 내가 방문한 곳은 미국 아칸소주나 멕시코의 작은 시골 마을도 아니었다.

 심지어 “코리아가 나라 이름이었어요?”라는 질문도 받았다. 한국제 휴대전화나 자동차를 갖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그 제품이 한국산임을 알려 주면 “일제나 스웨덴제인 줄 알았다”며 놀라는 이도 많았다. 독자들은 아마 “이렇게 무식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만난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멀쩡한 대학 졸업자들이었다.
 바로 얼마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출장 갔을 때 얘기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또 그 “북한에서 왔느냐, 한국에서 왔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똑똑하고, 석사 학위가 있으며, 연봉으로 20만 달러(약 2억4000만원)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말도 안 되는 질문이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게 바로 한류의 갈 길이 아직 한참 멀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들이 알고 있는 한국에 대한 사실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나라”라는 것뿐이었다.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를 둔 나는 비공식 한국 홍보대사처럼 느낄 때가 많다.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토크쇼 진행자를 천직으로 여기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상황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아픈 진실을 받아들이고 냉정히 분석해야 한류가 더욱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반도를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건 북한의 통통한(혹은 뚱뚱한) 젊은 지도자(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문일 때가 많다. 싸이의 말춤보다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더 주목을 받는 것 같다. 물론 홍보업계의 입장에선 나쁜 홍보도 좋은 홍보가 될 수 있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하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건 싸이와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모두 살을 빼지 않고도 자신들 본연의 모습 그대로 세계적 수퍼스타가 됐다는 점이다. 살을 빼고 때론 성형도 해야 하는 한류 수퍼스타와는 다른 점이다. 소녀시대가 10㎏씩 찌면 어떻게 될까? 그럼 아칸소주의 평범한 농부도 K팝이 북한이 아닌 한국의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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