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법원 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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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76년생 김모 변호사는 지난 4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사무실로 출근했더니 비서가 “법원에서 이상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고 했다. 김 변호사가 맡은 사건을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법의 한 재판부로부터 “김 변호사의 변호사 등록이 취소됐다. 맡고 있는 사건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황당한 소리였지만 그는 “행정착오인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사건을 맡은 재판부에 직접 따지기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날 사건 의뢰인으로부터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재판부에서 등록 취소된 김 변호사 말고 다른 변호사를 구하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어찌된 거요.”

 그 이후로도 서울고법을 비롯한 3~4개 법원에서 같은 내용의 전화가 걸려왔다.

뭔가 잘못됐다고 판단한 김 변호사는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에게 이 내용을 보고했다. 대표는 곧바로 전국 법원의 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에 자초지종을 문의했다.

 실상은 이랬다. 대한변협은 지난 4월 비리 문제로 변호사등록 취소 심의위원회에 오른 1968년생 김모 변호사의 자격을 심사해 등록을 취소시켰다.

공교롭게도 76년생 김 변호사와 같은 이름이었다. 변협은 68년생 김 변호사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집주소, 소속 지방변호사회, 변호사자격 등록번호를 포함한 등록 취소 내용이 적힌 서류를 법원행정처에 우편으로 보냈다.

 서류를 전달받은 행정처에선 내부 전산시스템으로 김 변호사가 맡은 사건을 검색했다. 하지만 각급 법원엔 엉뚱하게도 76년생 김 변호사의 등록이 취소됐다고 전달했다. 김 변호사와 동명이인인 7명의 변호사 중 실제 등록이 취소된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통보한 것이다.

 이처럼 황당한 실수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에도 이모 변호사가 “법원에서 ‘등록이 취소됐다’며 동명이인인 나에게 잘못된 전화를 걸었다”며 법원행정처에 강하게 항의했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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