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패 근절' 김영란법 정신 흩뜨려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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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질적 청탁 문화는 한국 공직사회를 오염시켜 온 온상이다. 그간 검찰 등 수사 기관이 공직자 부정부패에 대해 수도 없이 사정(司正)을 벌였지만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부정청탁금지 및 이해충돌방지법’(김영란법) 논란은 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지난해 8월 국민권익위원회(당시 위원장 김영란)가 입법 예고한 이후 정부 내 이견이 노출돼 온 이 법에 대한 정부 조정안이 그제 나왔다. 정홍원 총리가 권익위와 법무부의 이견을 조정한 결과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그 지위·직책에서 유래되는 사실상 영향력을 통한 금품수수는 대가 관계가 없더라도 형사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직무관련성이 없는 돈을 받은 경우엔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김영란법 원안이 1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았을 때는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형사처벌토록 한 것에 비하면 한 단계 완화한 것이다.

 이번 조정안은 법무부 등의 ‘과잉 처벌’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과태료 부과로도 해당 공무원은 중징계돼 공직 생활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란 설명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과태료 부과만으로 ‘떡값’ 문화를 근절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한 수사 없이는 부적절한 금품수수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른바 ‘스폰서’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선의(善意)로 준 것”이라며 교묘히 빠져나갈 가능성이 작지 않다. 조정안 중 ‘사실상 영향력을 통한 금품수수’ 부분이 지나치게 애매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의 생명은 명확성이다. “법원 해석에 맡기자”고 하는 건 옳지 않은 자세다. 다만 “한 끼 대접을 받아도 처벌되느냐”는 불안감이 있는 만큼 수수액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의 청렴도 평가에서 45위를 기록하며 2년 연속 하락했다. “공직자는 어떠한 돈도 받아선 안 된다”는 인식이 뿌리내리지 않는 한 공정사회도, 일류국가도 요원한 일이다. 그 중요한 입법이 부처 간 입장 절충으로 끝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