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교회 방화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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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제암교회는 1919년3·1운동이 터진 다음 달인 4월15일 일본관헌의 방화로 불탔다. 왜경은 이날 마을 한복판의 제암교회에서 특별강연회를 연다고 속여 15세이상의 마을 남자들을 교회당 안에 모이게 했다. 청년들이 교회당안에 들어서자 왜경들은 교회를 포위, 창과 문을 밖으로부터 못질하고 총질하면서 교회당에 방화, 29명을 태워 죽였다.
심지어 왜경은 남편의 죽음을 눈앞에 보고 통곡하는 아내를 칼로 목을 찔러 죽이기까지 했다.「두렁바위」라고 불리는 이 마을은 독실한 기독교 마을로 온 마을사람이 3·1 만세를 불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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