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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의 싸움 끝에 건져올린 '황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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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대우인터내셔널, 옛 ‘대우’ 브랜드의 소유권을 가진 회사다. 포스코 계열사가 됐지만 지금도 이 회사는 옛 대우그룹의 로고를 쓴다. 대우그룹의 소멸로 대우인터내셔널은 채권단을 시어머니로 두고 워크아웃을 했다. 포스코에 인수되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랬던 이 회사가 24일 기쁜 소식을 알렸다. 미얀마 서부 해안에서 가스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광구 계약을 맺은 지 13년 만의 일이다. 미얀마에 진출한 것부터 따지면 28년 만이다. 매장량은 원유로 환산하면 약 8억 배럴에 이른다.

 곡절이 없었을 리 없다. 광구 계약을 따낸 2000년 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에서 분리됐다. 회사는 어수선했다. 도전장을 던진 미얀마 서부는 일본 등이 시추에 실패하고 손들고 나간 광구였다. 무모하다는 우려도 나왔다. 포기하지 않았다. 시추에 참여한 직원들은 2004년 1월을 잊지 못한다. “어렵게 3000m를 뚫고 내려갔는데 가스가 없었다. 잘못 짚었나 싶었다. 시추봉을 다시 빼 중간부터 500m 옆으로 비스듬히 다시 내려갔다. 거기서 나온 흙에서 진한 기름 냄새가 확 풍겼다.”

 프로젝트명 ‘쉐(Shwe)’가 첫 결실을 본 순간이었다. 쉐는 미얀마어로 황금이란 뜻이다. 쉐퓨(Shwe Phyu, 백금), 미야(Mya, 에메랄드) 가스전을 차례로 찾아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가스는 안정적인 장기 수요처를 확보해야 상업 생산이 가능하다. 공급 파이프 공사도 해야 한다. 7~8년이 걸렸다.

 채권단 관리를 받는 회사로선 이런 장기전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있던 자산마저 파는 게 워크아웃이다. 가스전 지분을 일부 팔아 비용을 마련했다. 채권단은 빚을 받아내는 대신 미래 성장 동력을 지켜줬다. 이동희 대우인터내셔널 부회장은 “기업 회생을 위해 애써온 임직원의 땀과 눈물이 밴 가스전”이라고 말했다. 13년 만에 건져 올린 ‘황금’은 눈부시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억 달러를 투자했고, 앞으로 25~30년간 70억~80억 달러를 회수할 수 있다. 연간 3000억~4000억원의 수익이다.

 비결은 거창하지 않다. 꾸준히 계속했을 뿐이다. 회사의 흥망을 가늠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그들은 버텼다. 오늘도 제2의 미얀마 가스전을 찾기 위해 바다 위를 헤맨다. 일견 진부해 보인다. 묵묵히 하나씩 쌓아가는 건 요즘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귀가 솔깃해지는 아이디어에만 박수가 터진다. 규율에 따라 제 일을 하는 학생은 ‘범생이’라고 비아냥을 듣는다.

 최근 발표된 재계의 각종 하계 ‘제주포럼’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강연 주제는 ‘창조’ ‘혁신’ 일색이다. 모처럼 휴가를 낸 최고경영자들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창조의 홍수 속 어딘가에 대우인터내셔널의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도 한 자락을 차지했으면 한다. 묵묵히 계속 이어 가는 것, 그게 진짜 힘이다.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