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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의원회관 호화 정원 꼭 필요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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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손국희
사회부문 기자

25일 방문한 서울 중구 서소문 시의원회관은 마치 고급 일식집에 온 느낌을 풍겼다. 5, 7, 8층 휴게실에 고운 흙과 돌을 깔고 각종 조화(造花)와 대나무·소나무 모양의 인공 식물을 심어 정원을 조성했다. 직접 만져보기 전까진 조화인지 생화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했다. 정원 한편에선 전기모터로 물레방아까지 돌아갔다.

 서울시의회는 올해 예산 50억원을 들여 의원회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공 정원을 조성하는 데만 1억6500만원이 투입됐다. 1000만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시의회 의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쾌적하게 만들겠다는 데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의원회관에 생뚱맞게 조성된 인공정원을 직접 보니 몇 가지 아쉬움이 들었다. 일단 인공정원은 철저하게 시의원과 보좌관들만 이용할 수 있는 관상용 공간이다. 의원회관은 입구부터 통제되기 때문에 일반 시민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실제 25일 오후 인공정원이 조성된 의원회관 8층 휴게실엔 1시간여 동안 지나가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서울시의회 사무처 관계자는 “칙칙했던 의원회관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작은 규모의 정원을 조성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작 의원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 못한 듯하다. 한 시의원은 “없어도, 있어도 그만인 정원 때문에 혈세가 새는 느낌”이라고 했다.

 전력대란으로 공공·민간 부문을 가리지 않고 대대적인 에너지 절약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 예산 낭비를 감시해야 할 시의원들의 회관에 전기모터 물레방아까지 돌아가는 정원을 설치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여름철 에너지 절약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임옥기 기후환경본부장은 “서울시가 앞장서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심정으로 공공부문 에너지 절약에 나서겠다”고 했다. 서소문청사에 설치된 LED 조명의 조도를 90%에서 80%로 낮추고, 엘리베이터 운행을 감축하는 등 아주 소소한 부분까지 절약에 나섰다. 서민들은 전력 낭비를 막기 위해 집 안의 에어컨 플러그까지 뽑아놓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오는 7월부터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업소에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업주들은 “손님이 끊긴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시는 에너지 절약이 절박해진 상황에선 피할 수 없는 조치라며 밀어붙였다. 업주 55명이 단속돼 과태료 300만원씩을 문다면 딱 1억6500만원이 된다. 시의원회관의 호화 인공 정원을 만드는 데 투입된 예산이 에너지 낭비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개문 영업’을 한 55개 업소에 부과될 과태료와 같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손국희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