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가보지도 못한채|설악산조난구조대철수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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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설악산조난자 수색작업은 23일 미군「헬리콥터」편으로 대청봉에 가있던 9명의 수색대원이 하룻만에 철수함으로써 사실상손을떼게됐다. 이번 사고는 우리나라에서 처음만난 눈사태로 생긴조난사고인만큼 모든산악인의 관심을 모았지만 조난현장으로 가는「루트」조차마련하지못한채 수색이 끝났다. 특히 수색작업과정에서 한국산악회와 대한산악연맹의「헤게머니」쟁탈싸움과 무계획한 작업진행등으로 시간만 낭비한듯하여 가족들과 협조나온 군·경합동구조대원의분노를 불러일으키는등 투명하지못한 점도 없지않았다.
17일밤 처음 조난소식이 전해졌을때 대한산악연맹은 함께 수색작업에 나설것을 제의했지만 한국산악회가 묵살, 독단적인 구조대원을 현장에 보냈던것.
그러자 대한산악연맹은 18일「모든 산악인의 공동과제로 그냥 지나칠수 없다』면서 별도로 구조대를보내 20일 수색본부에 도착, 『뭣이든지 일하겠다』고 대원명단을 제출하는등 혼선을 빚었다.
21일 천불동계곡으로 접근을 시도할때만해도 산악회는 공격「팀」, 산악연맹은 지원「팀」으로짜져 그런대로 첫날은 무사히 구조작업을 할수있었다.
그러나 천불동 계곡 공격계획이 취소된후부터산악회와 산악연맹은 수색작업의 주도권 싸움으로 추태를 보였고, 자연히 수색작업도 계획성없이 갈팡질팡해질수밖에없었다.
두 산악단체의 싸움은 22일 미군「헬리콥터」편으로 대청봉공수작전을 세웠을때 불꽃을 튀겼다.
수색본부는 산악회에서 공격「팀」6명을선발, 산악연맹에서 지원「팀」6명을 선발, 지원「팀」이 먼저 대청봉으로 올라가 전진기지를 마련한후 공격「팀」이 오르도록했다.
그러나 정작 지원팀인 산악연맹대원이「헬」기에 오르자 산악회원인 전담씨가『우리들 앞에서 왜 너희들이 먼저 타느냐』고 고함, 연맹의 김초영씨가 『수색본부에서 정한 일인데 무슨 엉뚱한 수작이냐』고 응수하면서 서로 멱살을 쥐고 욕설을 퍼붓는등 격돌을 했다.
이 싸움끝에 산악회공격「팀」6명과 연맹의 지원「팀」3명만 대청봉으로 갔으나 싸움통에 천막, 식량, 장비등을 하나도 가져가지 못했다. 이꼴을보던 설악산악회장 이기섭박사는 분통을 터뜨리고 속초로 가버리는등 소동때문에 구조작업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기에다 조난자구조를 위한「스노·보트」「썰매」등 장비도 가지지 못한채 무턱대고 구조대원 개인장비에 의존했던 이번 수색작업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조난자 김종철군의 아버지 김치근씨(53)등 일부 유족들이 『현장에 못가는 이유가 뭐냐? 사람살리기위한 구조는 안하고 싸움만 하느냐』고따지는것도 이번 구조작업을 돌아볼때 그 소리를 듣고도 남음이 있다는게 현지실정이다.

<설악산=임시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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