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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리나라에서 영문학을 양반의 문학이라고 본다면 서민문학은 이른바 언문으로 되어 서민들이 즐기던 작품들, 또는 실학이 일어난 다음에 나온 작품들을 말한다.
우리네의 전통적인 문학적 발상법을 얘기할 때에는 시조 등의 영문학까지도 문제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근대문학의 기점은 역시 18세기 이후의 서민문학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서민문학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허균의 「허생전」이다.
남산골의 허생원은 가난을 참다 못한 아내의 강짜에 못 이겨서 당초의 계획을 앞당겨 하던 공부를 멈추고 치부에 나선다.
그의 방법은 가령 대화재가 있음직 하면 목재를 독점해 둔다거나 갑지의 특산품을 독점해 둔다거나 하는 식으로 독과점 치부의 고전적 수법을 쓴 것이다.
허생전에서는 이렇게 해서 거부가 된 그가 외딴 섬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이상향을 건설하는 것으로 얘기가 끝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이상향을 꾸미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더라도, 그의 독과점에 의한 피해를 제일 많이 입은 것은 서민들이었다는 것은 얄궂은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허생원 자신에 대한 결과는 둘째치고 서라도 우선 「허생전」의 작자의 근대성에 대하여 의심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경제학자의 얘기로는 치기를 위한 방법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치부의 목적이나 축적된 부를 어떻게 쓰느냐에 제일의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허균은 아득히 먼 내일을 내다 본 근대인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요새 갑자기 쌀이 귀해졌다. 특히 변두리에서는 뒷 거래가격이 6천원이나 된다 한다.
정부미 가격이 5천2백20원이니까 가마당 7백원 이상의 폭리를 쌀 상인들이 보고 있는 셈이다.
정부당국에서는 이같은 현상은 구정에 상인들이 철시를 하고 정부의 쌀 공급량이 불충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아무래도 상인들의 매점과 이에 따르는 가수요의 증가에 있는 것 같다.
선비였던 허생원조차 쓰던 상술을 장사치들이 안 따를 이는 없다. 그것을 또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허생원은 이상향의 건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지만 오늘의 쌀 상인들은 무엇을 위한 매점이요, 쌀값 조작인지 통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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