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양다리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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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연한 줄타기 외교로 이라크 사태의 와중에서 실리를 챙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전후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 러시아의 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동시에 이라크와의 장기적인 유대 강화를 겨냥, 유리 샤프라닉 전 석유장관이 이끄는 사절단을 지난주 바그다드로 보냈다. 그는 또 미국에 "종전 뒤 유가를 18달러 이상으로 유지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측은 "유가 급락은 없을 것"이라고 러시아를 안심시켰다. 일부 외신은 전후 이라크 유전 배당과 관련, 미.러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전후 이권을 겨냥, 민첩하게 움직이고 미국으로부터 이익을 보장받았지만 러시아가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이라크 공격 반대다.

러시아가 앞으론 미국을 반대하고 뒤론 미국으로부터 이익을 보장받는 '양다리 외교'를 펼치는 데 대해 파이낸셜 타임스는 11일 "러시아가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면서도 정면도전하기보다 프랑스.독일 뒤에 숨는 작전을 구사한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또 "단서가 있지만 러시아는 필요하면 이라크 공격을 지원한다는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양다리 작전'을 펴는 이유는 미국을 공개 지지하면 중동국가의 신뢰를 잃어 실리를 놓치게 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중동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다양하다. 우선 이라크 유전 개발권과 90억달러에 달하는 이라크의 구소련 시절 외채가 있다. 또 중동 지역은 연 40억달러에 달하는 러시아 무기를 구입하는 중요한 재정 수입원이다.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는 중동권의 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동시에 무작정 미국을 반대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현안을 안고 있는 러시아로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협력이 아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려운 시기의 진정한 친구를 기억할 것'이라고 공언하는 미국과 '먹을 것'이 많은 중동국가를 의식, 러시아는 양쪽에 추파를 던지는 '줄타기 외교'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유철종 기자 <cj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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