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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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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병도<학술원회장>
한 마디로 말해서 지금우리 사회에는 형식치중의 풍조가 너무도 넘치고 있는 것 같다. 생활의 속속들이에서 이것이 활개치고 심지어 정신문화마저 이것이 마비시키려고 한다. 사회기풍이 이 형식면으서만 조장된다면 장차 어찌될까 적이 우려된다.
사람의 공적인 생활이나 사적인 생활에 있어「형식」을 필요로 할때도 있으며 또 본래 그것은 「내용」과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에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하고 혹은 형식일변도로 달아날때 우리 생활과 문학는 균형을 잃고 또 그 많은 폐해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외국사람이라고 형식적인 면을 장식하지 않는바 아니지만 한국인은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종래의 인습에 외내풍조까지 겹쳐서 형식 투성이로 돼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국인의 외면 치례는 오랜 역사를 통한 생활성격의 하나인데, 근래엔 외례풍조가 더욱 박차를 가하고있는 것이다.
근래 대학을 보면 우선 건물부터 굉장한 규모이다. 언뜻 우리대학사회의 발전과 지적개발을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러나 그 시설과 질을 보면 낯이 뜨겁다.
속을 충실히 다듬어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요, 외모를 과시하고 선전하는 유행병에 걸려있는 것이다. 또 학문하는 사람들이 저서를 많이 내는 것은 경하할 일이면서도 종이가 아깝게 여겨질 경도의 사례도 적잖다.
각대학과 학회는 서로 경쟁하둣 논문집을 내는데 너무도 옥석이 가려져 있지 않다. 학문이 이다지 용이해진 것일까, 혹은 출판기념회를 갖기 위해 책을 내는 것일까.
정부는 정부대로 문화표현을 정치이념의 장식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 장식물의 내용면에서가 아니라 형식 위주로한 것이다. 막대한 비용으로 광화문을 재건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문화재의 수리나 수호가 아니며 사실상 위풍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그건 나라가 부강한 뒤에 해도 될것이며 지금은 더 실속 있고 급한면에 돌려 유효롭게 써야할 때이다.
작금 거국적인 사업으로 동상이 허다히 건립된다. 초상이 없으므로 상상해서 만든다. 진실로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인가. 그 동상을 쳐다보는 것은 유의하는 몇몇사람뿐이요, 국민이 다 숭앙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도 않다. 굳이 동상이 필요하다면 극히 두드러진 몇분 외에는 불필요하다. 오히려 추앙심을 국민의 마음속에 길러 지주가 되게해야한다. 동상을 세우느니 보다 그들에 대한 역사와 전기를 주지시키는 것이 현단계에선 더 긴요하다.
형식주의 때문에 우리의 정신문화까지 비뚤어지고있다. 외모수식에 눈팔다가 실다운 근대화가 저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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