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 속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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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른 가지가 길게 늘어진 창가의 수양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먼 생각에 잠겨 있는 나에게 등뒤에서 부른다.
『아줌마 냉수 한「컵」만 더 주세요.』
벌써 다섯번째 시키는냉수 심부름이다. 덧없는 실소를 하면서도 돌아선 내 두다리는 피로에 지치다 못해 마른 수양버들가지처럼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30원짜리 차 한잔을 팔기 위해 한사람에게 무려 냉수 심부름을 두 번 아니면 세 번, 심지어는 지금처럼 다섯 번도 좋은 낯으로 해야한다. 네번 다섯번으로 되풀이 될때면 한번쯤 눈이라도 흘겨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단돈30원에 이렇듯 매력을 느끼며 역겨운 나날을 보내야하나 싶은 서글픈 생각이 가슴을 치지만 그래도 뿌리치지 못하는 차가운 현실. 30원이 모여서 3백원이 되고 3백원이 쌓여서 3천원이 되려니. 그리고 어느날 엔가는 화사하게 수놓아 두었던 푸른 꿈이여 가슴 한구석에 접어둔 자존심도 날개를 펼 수 있는 날이 오려니. 이런 기대 속에서 고달파도 마음이 슬퍼도 어쩔 수 없이 노력하며 웃으며 또 이런 실없은 푸념 속에 하루를 보낸다.

<강봉주·서울영등포구 당산동 5가 33 국제모터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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