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한국·베트남에선 아직 끝난 것이 아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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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권헌익 교수

“유럽, 북미 지역의 냉전은 끝났어도 우리의 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권헌익(51·인류학) 석좌교수의 진단이다. 2010년 미 컬럼비아대출판부에서 나온 바 있는 영문 저서 『또 하나의 냉전』(민음사)이 18일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냉전이라면 대개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 붕괴로 끝났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권 교수는 그같은 냉전관은 서구 중심부 국가들에 적용되는 방식이라고 했다. 한국과 같은 비서구 지역의 냉전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곳에선 정확히 말해 냉전이 지난하게 진행되며 끝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책 제목이 ‘또 하나의 냉전’인 이유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을 서구인들은 ‘상상의 전쟁’이나 ‘오랜 평화기’로 기억하는데, 한국이나 베트남의 경우 전례 없는 전쟁과 폭력을 경험했다. 이렇게 다른 냉전의 역사를 서구의 시각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게 권 교수 주장의 요지다.

 -인류학에서 냉전 연구가 일반적인가.

 “전혀 아니다.”

 -인류학에서 연구하면 뭐가 다를까.

 “인류학은 한 문화체계를 다른 쪽과 비교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냉전 연구는 그 같은 비교사적 시각이 적다. 나의 관심은 구 소련에서 시작해 베트남을 거쳐 북한으로 이어지고 있다.”

 권 교수는 인류학계에서 가장 큰 상으로 꼽히는 기어츠상 2007년 첫 수상자다. 수상작은 베트남전쟁을 다룬 『학살, 그 이후』. 서울대 사회학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가 미시간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인류학 석·박사를 했다. 시베리아 원주민 수렵사회와 베트남전쟁의 추모문화 등에 대한 인류학적 탐사에 이어 한국 6·25전쟁에 관심을 가지며 펴낸 책이 『또 하나의 냉전』이다.

 -냉전에 관심 가진 계기는.

 “옛 소련 시베리아 연구로 박사학위 받은 게 93년이다. 사회주의체제가 해체되던 때인데, 냉전의 대한 서구의 인식이 아시아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시아에서 냉전이 종식되어가는 과정을 풀어보고 싶었다.”

 -요즘은 뭘 연구하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을 받으며 2년 전부터 케임브리지대에서 한국전쟁을 세계사적이고 사회사적 관점으로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세계사적이고 사회사적 관점이란.

 “한국전쟁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고, 또 남과 북, 미국과 소련 같은 국가의 시각보다 가족이나 공동체의 아픔과 경험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6·25전쟁 발발 원인을 놓고도 논란이 있다. 90년대 이후 공개된 옛 소련 기밀문서들에 의하면 이런 논란은 끝내야 하는 것 아닌가.

 “끝내야 한다. 소련·북한·중국의 준비된 남침이란 것은 분명하다. 옛 소련 문서는 국제정치 분야에서 많이 다뤄왔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중요하지만 나는 그와 달리 전쟁의 영향과 상흔을 주로 조명한다.”

 -한국전쟁이 내전이냐 국제전이냐를 놓고도 입장이 갈리는데.

 “내전이면서 국제전이다. 국제사·정치사 쪽에선 국제전을 강조하고, 나처럼 사회사를 하면 내전의 시각이 부각된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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