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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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선물 교환은 세모 풍경중의 하나다. 으스한 밤길에 「오버」깃을 바짝 세우고 네모진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서 남의 눈을 피하듯 철책 대문의 초인종을 조심스럽게 누르는 말단「셀러리맨」들 선물 괘짝을 싣고 밤길을 질주하는 「택시」들… 이것들이 세모 서울의 풍치를 이룬다. 선물이란 원래 다정한 사람끼리 또는 평소에 가르침을 받았던 웃어른이나 선배들에게 지난날의 사은에 보답하고 보람찬 내일을 맞도록 기원하는 성의의 표시 였겠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이와 같이 순수한 의미의 선물을 받아 본적도 주어본적이 없다.
수없이 교환되는 선물중에서 「선물」이란 본래의 의미에 합당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 생각도 해본다.
대부분이 지난날 신세를 진 사람이니, 그런 사람과 이런 기회에 인사를 나누는 것도 바쁜 출세길에 결코 해로울 것은 없다는 등등의 생각일 것 같다. 여하튼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는 말단 「셀러리맨」에게는 선물이 판치는 세모는 괴로운 시간이다.
그런데 요사이 세칭 좋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겐 선물 받는다는 것이 그토록 매력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꼬리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선물이 나돌 계절쯤 상급 기관에서 무슨 명목으로든지 하급기관에 행차하면 저녁엔 으례 「섰다」 판이 벌어져 높으신 분들이 따기가 일쑤다. 「신 선물법」이라 이름을 붙여볼까? 주는 사람 받는 사람도 명분이 서고 꼬리가 잡힐 까닭이 없어서인지 환영을 받는 방법 같다.
선물도 타락했다는 생각이든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다같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선물을 받고서 보낸 사람의 따습고 두터운 마음을 접한 것 같은 기분 좋은 선불을 주고받고 싶은 68년의 세모다. <이걸삼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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