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때문에 … 꼬리잡힌 나치 전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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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65년 동안 평범한 미국인으로 신분을 속이고 살아온 독일 나치 전범이 자신이 출간한 회고록 때문에 꼬리가 잡혔다. 1943년 독일 나치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뒤 나치 친위대 보안방첩부(SD)와 함께 우크라이나 자위대를 창설해 사령관을 지낸 마이클 카콕(94)이다. 이 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폴란드 여성과 어린이를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등 만행을 일삼았다고 AP통신이 15일(현지시간) 전했다.

 카콕의 부대는 44년 우크라이나 지하조직이 친위대 장교를 살해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폴란드 민간인 마을을 불태워 버렸다. 당시 어머니와 친척을 잃었다는 샘 라포위츠는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어떻게 신분을 속이고 미국에서 살 수 있었느냐”며 “지금이라도 그를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란드와 독일은 AP통신 보도 후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카콕은 애초 미국 정부가 만든 전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미국 입국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신분 세탁’을 통해 과거를 속이고 7개 이민 당국의 신원 조회를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그는 심지어 1년 동안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일했다고 진술했다. 49년 무사히 미국으로 건너온 카콕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북동쪽 우크라이나인 밀집 지역에서 목수로 일하면서 59년 시민권까지 받았다. 그는 우크라이나 관련 단체에도 열심히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분이 들통난 건 카콕 자신이 쓴 자서전 때문이었다. 은퇴한 약사로 나치 전범 기록을 조사해온 스티븐 앙키에가 우연히 영국국립도서관과 미국의회도서관에서 95년 발간된 카콕의 회고록을 발견했다. 카콕은 이 회고록에 자신이 우크라이나 자위대 사령관으로 있으면서 나치 친위대의 명령을 받아온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 카콕이 이 같은 회고록을 왜 썼고 어떤 경로로 도서관에 보관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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