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의원 인사 청탁은 무죄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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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호 02면

민주당 오제세 의원(청주 흥덕갑)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청탁의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현장이 포착됐다. 올 들어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네 번째 인사청탁 문자메시지다. 이번 소동이 더 충격적인 건 오 의원의 남다른 위상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의원에게 모범이 돼야 할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이다. 게다가 지난 5월30일 법률소비자연맹이 19대 국회 의정활동 평가에서 ‘국회 헌정 대상’으로 뽑은 바 있다. 스스로도 2010년 ‘공무원 뇌물 청탁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정도 관록과 명망을 갖춘 의원이라면 다른 일도 아닌 인사청탁으로 인한 망신을 삼가야 했다.

이를 놓고 새누리당 충북도당은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사죄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오십보백보다. 새누리당이 그럴 자격이 있는가. 지난 4월 29일 새누리당 K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취업 청탁으로 의심되는 문자를 받았을 때 새누리당과 해당 의원이 제대로 반성문을 썼는지 묻고 싶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청탁을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말한 부분도 그렇다. 본회의장 바깥에서 청탁을 하면 괜찮다는 말인가.

본회의장에서 인사청탁을 하다 들통난 경우가 이달에만 세 번 발생했다. 지난 2일엔 한 여당 의원이, 4일엔 한 야당 최고의원이 취업 청탁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300명 현역 의원들의 실태를 낱낱이 조사하면 과연 어떤 지경일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른바 ‘의원 청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탁 대상도 전방위로 뻗쳐 있다. 어느 부처의 공무원은 “미칠 정도”라고 하소연한다. 최근 이학렬 경남 고성 군수는 ‘청탁 금지 공문’을 내리면서 “이런 내용을 국회의원에게도 전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다. 물론 의원들에게도 지역구 주민들의 민원성 부탁을 거절하기 난감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흔히 있는 의례적인 부탁이라고 변명하고 싶을 거다. 그러나 의원들의 청탁 속에는 ‘두고 보자’는 위협이 깔려 있다는 게 문제다. 국회 상임위 소속 정부 부처나 산하 기관에 ‘초(超)수퍼 갑’인 의원들이 아무리 고운말로 부탁한들 상대방은 압력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요즘 핫이슈가 된 ‘갑을 관계’ 바로잡기나 ‘공정 사회’ 확립은 기대조차 하기 어렵다.

우리는 ‘김영란 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방지법’을 서둘러 제정할 것을 재삼 촉구한다. 이 법은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 여부를 떠나 공직자들의 금품 수수나 공직자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금지하는 것이다. 의원 개개인의 도덕성에만 맡겨 놓기엔 ‘의원 청탁’의 현실이 너무 고질적인 데다 그 뿌리가 넓고 깊기 때문이다. 아울러 선거 도우미나 후원금 등을 매개로 의원들에게 청탁 전화를 요구하는 일반인들의 ‘갑(甲)질’을 막을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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