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 실력은 거기서 거기 손님과 눈 맞춰야 감동의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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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 초밥집 ‘스시 큐베이’ 사장 겸 조리사 이마다 요스케(68). [사진 웨스틴조선호텔]

“최고의 초밥집을 운영하는 비결요? 손님을 최대한 잘 모시는 거죠. 초밥 만드는 건 쉬운 일이죠.” 만화 ‘초밥왕’에서 ‘초밥 장인’들은 밥알의 개수나 초밥을 쥐는 손의 미세한 온도 같은 최고의 비법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다. 뻔한 정답으로 들리는, 굳이 그가 아니어도 들을 수 있는 대답을 말했다. 일본 도쿄의 ‘명품 거리’로 불리는 긴자(銀座)를 비롯해 도쿄 오쿠라 호텔, 뉴오타니 호텔, 오사카 데이코쿠 호텔 등에 초밥 전문 레스토랑 ‘스시 큐베이’ 7군데를 운영하는 ‘초밥 장인’ 이마다 요스케(68) 사장 얘기다.

그는 51년째 초밥을 만들고 있다. ‘초밥 명인의 사관학교’로도 불리는 그의 식당 ‘큐베이’는 명사의 단골집으로도 유명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 자동차업계 거물들, 영화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 스타벅스 회장 하워드 슐츠, 영화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 등이 도쿄에 갈 때면 이곳에 들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에서 자신의 초밥을 선보이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음식에 만족 느끼게 하는 건 배려심

이마다 요스케의 아버지 히사지는 1936년 도쿄에 자그마한 초밥집을 열었다. 이마다 사장은 “초등학교 시절 작문 시간에 ‘아버지 같은 훌륭한 초밥 장인이 되겠다’고 썼을 정도로 초밥 조리사가 되는 게 당연한 장래 희망이었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8세 때부터 초밥집에서 일했다. 시작은 아버지의 식당이 아닌 교토의 다른 초밥집이었다. “주방장 겸 식당 주인인 사람과 나, 단둘이 일하는 작은 식당이었죠. ‘가서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오라’는 게 아버지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가게가 작으니 청소나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부터 재료 구입이며 손질, 손님 응대까지 거기서 모든 걸 다 경험했어요.”

다시 도쿄의 아버지 곁으로 돌아와 일을 배운 그는 차근차근 초밥 식당의 명성을 쌓아갔다. “수십 년 전엔 일본 사람들도 초밥집에 들어가길 주저했어요. 뭘 어떻게 시켜야 하는 건지 긴장한 건 물론이고, 식당에 정해진 가격이 없어서 주인들이 손님마다 그때그때 가격을 달리 매겼거든요.” 그는 “단골의 1000엔이든, 처음 온 손님의 1000엔이든 똑같아요. 그래서 가격부터 제대로 매기고 메뉴판에 적어 넣었죠.” 그가 말한 ‘손님을 모시는 식당’의 시작이었다. 그는 “조선호텔 일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가면 공항에서 바로 긴자 식당으로 직행할 겁니다. 조리사들이 손님들을 제대로 맞고 있는지, 손님들은 만족해하는지 무척 궁금하거든요.”

손님 얘기 중에 칼질하는 것도 결례

손님, 손님만을 외치는 그가 혹시 초밥 만드는 비결 밝히길 꺼려서 다른 답을 하는 건 아니었을까. “초밥 만드는 건 누구든 할 수 있어요. 쌀과 재료, 초밥의 기본을 제대로 구하고 알맞게 손질해 내면 그만이죠. 그런데 손님이 음식을 다 먹고 ‘정말 만족스럽다’고 느끼게 하는 건 그것보다 다른 데 있어요.”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부모님이 식당을 하시니 외식할 기회는 별로 없었어요. 아주 가끔 외식을 하게 되면 늘 부모님이 말씀하셨어요. ‘누군가 정성껏 만들어준 음식을 먹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감사하라’고 하셨죠. 아직도 그 기억을 새기고 있어요. 지금 제 식당을 찾는 손님들도 제 음식을 드시면 그렇게 감동받게 하고 싶거든요.”

‘초밥 장인의 사관학교’란 별명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가요? 뭐 달리 교육과정 같은 걸 갖고 있진 않아요. 다른 식당과 마찬가지로 젊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설거지부터 일을 배우며 경험을 쌓게 하죠. 사관학교란 별명은 잘되는 식당이라 생긴 것 같아요. 규모가 있으니 일도 많고 사람도 많이 필요하죠. 여기서 실력을 갈고닦은 사람들이 자기 식당을 열면 나가서도 잘하니 ‘큐베이에서 배워서 그렇다’는 입소문이 난 거고요.” 그는 “손님 응대가 제대로 안 되면 가장 크게 화를 낸다”고 했다. “초밥은 현장성이 강한 음식입니다. 손님 앞에서 만들고 바로 드시게 하는 게 핵심이죠. 손님과 ‘스시 카운터’에서 교감하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손님 말씀 중에 칼질을 한다거나, 딴 데를 본다거나 하는 결례를 저는 참지 못해요. 어떤 상황에서도 손님과 눈을 맞추며 대접을 해야죠.”그가 강조한 손님과의 교감은 그에게도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손님 바로 앞에서 모든 걸 해내야 하기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에요. 저 같은 사람도 그게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으니까요.”

경영학 전공한 아들도 초밥 조리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를 이어 50년 넘게 초밥을 쥐고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운 아들도 초밥 조리사로 키웠다. 아들 가에히사(39)는 현재 오쿠라 호텔 지점을 맡고 있다. “다른 직원과 똑같이 청소, 설거지부터 시켰어요. 스물둘에 시작했으니 17년을 했네요.”

이마다 사장은 “긴자에 있던 많은 고급 식당이 그간 명멸하는 걸 봐왔다”며 “주방장에 따라 식당이 좌우되기 때문에 식당 명성을 유지하려면 주인이 조리사인 게 좋다”고 했다. ‘아들보다 더 훌륭한 장인이 있다면 그에게 식당을 맡기겠느냐’고 물었다. “경영 컨설팅도 받아봤는데 딱 떨어지는 답은 없더군요. 아들 말고 더 훌륭한 사람이 당연히 있겠죠. 하지만 그런 사람은 대부분 자기 식당을 하고 싶어 하죠. 붙잡아두긴 힘들고요. 그렇다면 그 사람과 아들이 함께 경영을 하게 하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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