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의 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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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교부는 공립중학의 공납금을 사립학교와 같은 수준으로 올릴 뜻을 밝혔다. 이것은 「공」·「사」의 분별을 사실상 없애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립학교를 설립한 뜻은 국가에 의한 시범교육을 시도하는데도 큰 몫이 있다. 국가의 보조로 좋은 시설을 갖추고, 그러나 염가로 교육을 시키는, 어쩌면 사립학교에 대한 『경각제』적 역할을 하는데 설립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결국 공립의 공납금을 사립의 수준으로 올린다면, 공립학교는 공납금인상의『저울추』역할을 하는 셈이다.『공립』과『사립』은 공납금「시소」를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공립의 공납금을 올리기 위해 사립의 그것을 올려주고, 공립은 바로 그 구실로 해서『사립』의 무게만큼 저울추를 올려놓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다.
희랍신화에 『프로크러스티즈의 침대』라는 얘기가 있다. 철제침대를 고정시켜 놓고, 그 침대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키를 늘리고, 그보다 큰 사람은 남는 길이를 가차없이 절단했다. 이 쇠 침대는 모든 척도의 순서를 뒤바꾼 무질서의 상징이었다. 이 침대 위에서 살아 남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신화가 주는 교훈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척도의 질서를 바로잡으려는데 있다. 만일 공립의 공납금이 사립의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가의 교육정책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립은 결코 『프로크러스티즈의 침대』는 아닌 것이다. 공립학교의공납금이 조금이나마 싼 것은 공립에 대한 신뢰감을 주는 것이다. 국가는 마땅히 국가의 보조로 공립학교를 모범적인 위치에 올려놓을 의무가 있는 것이다. 국가가 굳이 공립의 시설을 공납금에 의존하려한다면 그것은 사립학교 운영에 대한 지금까지의 모든 혐의를 국가가 그대로 뒤집어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공립학교의 공납금은 사립학교의 공납금을『합리선』에서 묶어 놓을 수 있는『신뢰의 추 (錘) 』역할도 해야할 것이다. 오히려 공납금 인상의 공범 같은『악덕의 추』역할을 스스로 하려는 것은『프로크러스티즈의 침대』적 사고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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