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고집이 콘텐트다 ④ 반구대 암각화 사진가 김태관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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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자신이 찍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 사진을 배경으로 선 김태관씨. 그는 “아마추어가 찍은 사진이지만, 암각화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척에 살면서도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울산시 울주군 주민 김태관(65)씨의 집에서 선사시대 바위그림 반구대 암각화까지는 산길을 걸어 10~15분 정도의 거리. 1995년 암각화가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후에도 먹고 살기에 바빠 찾아가 보지 못했다.

 그가 암각화를 처음 만난 건 2000년 3월 울주군 문화재 명예관리인으로 임명되면서다. “햇빛이 쫙 비칠 때 보니 바위 안에서 고래와 사슴, 호랑이가 춤을 추고 있더군요. 장관이었습니다.”

지척에 살아 명예관리인 임명

 그는 “내가 본 아름다움을 기록으로 남기리라”는 생각에 바로 1회용 카메라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바위그림을 주로 찍었지만, 나중에는 인근 풍경까지 시야가 넓어졌다. 그렇게 8년 여 찍은 사진이 1000여 장. 두꺼운 파일 4권을 빼곡하게 채웠다. 사진 속에는 다양한 표정의 암각화가 있다. 2000년 4월 가뭄으로 암각화 인근 흙바닥이 쩍쩍 갈라진 모습, 2002년 8월 홍수로 물에 완전히 잠긴 암각화, 그리고 눈으로 하얗게 덮인 한겨울의 반구대 등이다.

물에 잠기는 과정 수치로도 기록

 반구대 암각화는 인근 사연댐의 수위 변화에 따라 연중 5~6개월간 물 속에 잠겨 있다.

김씨는 암각화가 점차 물에 잠겨가는 과정을 수치로도 꼼꼼히 남겼다. 예컨대 2006년에는 6월 중순 이후 수위가 오르기 시작해 7월 10일 암각화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 암각화를 제대로 보려면 빛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암각화에 햇빛이 도달하는 시간도 날짜 별로 정리했다. 2001년 3월 5일 오후 5시 10분부터 5분간, 3월 12일 4시 50분부터 30분간 암각화에 햇빛이 직통으로 들어왔다.

 그는 “쓸 데 없는 짓을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전생에 암각화를 그린 신석기인”이라며 타박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1회용 카메라로 찍었지만, 나중에는 성이 차지 않아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장만하기도 했다.

 “저는 문화재 전문가도, 사진가도 아닙니다. 구도나 촬영기법 같은 것도 몰라요. 서툰 솜씨로나마 반구대를 매일 지켜보는 사람의 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방치하나 … ” 화 치밀기도

 가장 당황했던 순간은 암각화가 물에 잠긴 줄 모르고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을 만날 때였다.

“그림을 보겠다며 이 멀리까지 온 사람들한테 ‘때를 잘못 잡았다. 지금은 물에 잠겨 있다’라고 말하기가 수치스러웠습니다.” 물이 빠지고 난 후 허연 물이끼를 뒤집어 쓴 암각화를 볼 땐 “이렇게 내버려둘 거면 국보 지정은 왜 했나” 싶어 화가 치밀기도 했다.

 올 들어 암각화 보호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그가 찍은 사진의 가치도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일부는 최근 출간된 『그림으로 쓴 역사책 반구대 암각화』(예맥)에 실렸다. 2008년 암각화 관리인을 그만둔 그는 요즘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다. 예전처럼 자주 반구대를 찾지 못한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훼손되는 모습이 보여 마음이 아파요. 논쟁만 하지 말고 하루 빨리 암각화를 지킬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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