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STX 구조조정 두 달 3가지가 안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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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권단이 재계 순위 13위 STX그룹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선 지 63일이 지났다. 지난 4월 8일 STX조선해양의 자율협약 신청이 받아들여진 게 시작이었다. 채권단은 그동안 STX그룹에 1조900억원을 쏟아넣었다. 이달 중 STX조선에 지원할 4000억원과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5800억원을 합치면 지원액이 최소 2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되레 국내 해운업계 3위인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산업은행이 인수를 검토하다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확실히 살리겠다던 STX조선조차 처분을 기다리는 동안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

 STX 구조조정은 박근혜정부의 첫 대기업 수술이다. 앞으로의 대기업 구조조정의 시금석이다.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겼을까.

감독 당국, 존재감 없고

 STX의 주채권은행은 산업은행이다. 주채권은행은 구조조정에서 통상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수출입은행·농협은행·정책금융공사·우리은행 등 다른 채권은행들은 산은이 총대를 메기를 바란다. 그러나 산은은 의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장은 “국가 경제 차원에서 STX를 살리기로 했으면 산은이 먼저 지원하고, 자율협약 실사 뒤에 다른 채권은행들과 분담해도 늦지 않다”며 “산은이 앞장서지 않으니 다른 은행들이 따라가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감독 당국은 존재감이 없다. 금융위원회는 나서지 않고 있다. “정부가 특정 기업을 지원하면 세계무역기구(WTO) 등으로부터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금융위를 대신해 ‘완장’을 찬 금융감독원의 ‘말발’도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를 막기 위해 채권단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채권단의 구조조정) 방향이 크게 잘못되면 개입할 수 있겠으나, 현재로선 그럴 이유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채권단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정말 STX를 살리고자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STX 규모의 기업이라면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직접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주장에는 감독 당국에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속내가 숨어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STX 구조조정의 조타수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금 지원에 큰 그림 없고

 채권단이 분열된 이유 중 하나는 추가 자금 지원이다. 이 중에서도 회사채 상환액 지원이 큰 이슈다. 산은 등은 지원이 불가피하다며 동의를 재촉하지만 일부 채권단은 “높은 수익률을 챙긴 회사채 투자자의 돈까지 보전해주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역시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원칙을 정해놓지 않아 생긴 문제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애초부터 속속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문제가 STX의 목을 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막대한 규모의 회사채를 어떻게 할지를 포함해 처음부터 큰 그림을 갖고 시작했어야 하는데, 정부도 산은도 그런 게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담보로 갖고 있는 ㈜STX 지분 10.8%를 매각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STX는 STX의 지주회사다. 우리은행이 이 지분을 시장에서 처분하게 되면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가 헝클어지게 된다.

시간 끌다 주가 급락

 STX는 채권단의 ‘시간 끌기’에 대해 불만이 크다. 구조조정에는 방향성과 함께 신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산은이 실사에 두 달을 쓴 뒤 인수를 포기한 STX팬오션 처리다. 팬오션 관계자는 “팬오션 인수에 대한 산업은행의 불확실한 태도로 다른 투자자들의 관심까지 멀어지면서 최악의 결과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화진 키움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는 산은의 인수를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많았다. STX 팬오션 회사채에 대한 개인 투자자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인수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시그널을 시장에 미리 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채권단 내에서도 더딘 의사결정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한 은행장은 “채권단 안에서 분담액을 정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면 기업은 더욱 어려워진다. 협력업체가 많은 만큼 속도를 높여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지연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주가가 급락하고, 거래선이 끊기면서 유동성이 점점 메마르게 된다. ㈜STX 주가는 4월 8일 이후 68.8%, STX조선해양은 31.2% 하락했다. 주가 급락은 담보가치를 떨어뜨려 다시 STX 회생을 막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이상렬·박진석 기자

자율협약  ‘자율협약에 의한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의 줄임말이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나 신용위기로 기업이 부도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함께 기업을 지원하는 제도다. 기업이 신청하고 채권단이 실사해 회생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자율협약이 실시된다. 이후 채권단은 대출 만기를 늘려주고 추가자금을 내주는 등 유동성을 지원하고 구조조정을 돕는다.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법원이 주도하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와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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