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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의 생명과 한글 전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자 혼용은 후퇴다>
이번 한글날을 맞이해서 학자나 학회간에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는「한글전용」이란 어려우니 한문자를 섞어 쓰면서 점차로 계단을 밟아 나가야 할 것이라든가 또 한문자를 철폐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이러한 주장들은 내말과 내글의 발전을 위한 전진의 태도라고 할 수 없고 확실히 한가지 후퇴의 논법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논지나 주장은 정부가 내명년부터 모든 공문서를 한글로 쓰게 하겠다는 것이 지나친 「강제」가 되기 쉬울 것을 염려한 때문 같기도 하다.
물론 거기에도 한글 전용의 표현 상 문제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문자 만을 알고 우리 국문자를 못 읽는 사람이 많다면 모르거니와 한문자를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국문자를 모른다는 국민이 없을 것인 이상 국가의 공문서를 되도록 널리 국민에게 알려주기 위한 전제에서 한글 전용을 하겠다는데는 별반의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글이 훈민정음으로서 반포한 5백22년전 세종대왕은 우리말을 위한 우리 글자의 재정의 필요를 말씀하시기를『사람들이 쉽게 익히고 이용에 편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했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한문자로된 글이 배우기 힘들고 문장으로 의사를 표현하기 힘든 그 답답한 국민의 사정을 민망히 여기셔서 국민으로 하여금 쉽게 배우고 널리 읽고 많은 깨우침을 가지게 하여야겠다는 뜻이 얼마나 강렬했던가를 짐작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문자의 대중적 보급과 실용에서 문화의 혁명적 발전을 기대했던 것이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근대적 문화혁명의 횃불이 아니었던가고도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왕명으로 한글이 개정 반포되었으나 많은 한문학의 선비들의 반대에 부딪쳐서 세종대왕 자신도 상당히 고민하셨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오늘의 형편도 그때와 비슷한 무엇이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우리말 살리기 위해>
한글의 대중적 보급과 실용화를 위한 한글 전용의 문제를 한 문자 사용의 전폐나 금지를 전제로 한다 든가 또는 그럴 것이려니 하고 서로 찬성과 반대의 아귀다툼을 하자는 것은 아무런 뜻도 못 가진다고 할 것이다. 지금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 독일어, 불란서 말과 글을 가르치는 터에 한 문자는 가르쳐서 아니 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물론 구라파의 말은 현대문명을 받아들이며 그 사람들과 교섭을 위한 것이라고 할는지 모르나 한문은 중국의 고전 공부를 위하여 필요하다는 것을 무시해서 아니 될 것이다. 서양의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그리크」나 「라틴」어를 공부하여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현대의 구라파 글을 공부하기 위해서도 「그리크」나 「라틴」어 에 관해서 무관심할 수 없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학문하는 일에 제한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글 전용의 문제는 문자의 문제로서보다도 먼저 우리말을 살리기 위한 문제로서 다루는 것이 더 실제적이고 필요한 일이리라고 생각된다. 생각컨대 한민족의 생명은 그 기본적인 것을 혈통적인 종족 관계에서보다도 문화적으로 언어의 생성 발전 면에서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유구한 역사를 지닐 수 있었다는 것도 우리의 개성을 가진 창조적 문화의 업적을 이어 나갈 수 있은 때문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화의 업적과 전동의 계승·발전은 우리말의 발달과 아울러 우리 민족의 생각하는 힘의 발전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우리 민족의 철학이 있고 논리가 있고 윤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말을 더 정확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일은 우리 민족 문화의 새 길을 닦아 나가는 일이요 또 민족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랫동안 한문 문자에 중독 되어 있었고 또 뒤에 일본의 침략에 의하여, 일본말 사용의 강제로 인하여 우리말이 많이 제 것 아닌 딴 물에 더럽히며 그 때문에 우리 정신이 시들었던 것을 생각할수록 우리는 내 말을 되찾고 되살리는 일이 모든 문화 운동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한글 전용의 문제는 우리말을 살리기 위한 극히 긴요한 일의 하나가 될 것과 동시에 대중으로 하여금 널리 깨우침을 가지게 하는 가장 큰 수단이 될 것을 누구나 의심치 않을 것이다.

<언론에서 앞장서야>
지금 세계의 공통어로 이르고 있는 영어의 역사를 보아도 우리말과 글에 대한 한문의 관계와 같은 「라틴」어와 불란서 말과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영국이 영어 국민으로서 통일 형태를 이루는 경과는 영어의 근대적 발전의 역사와 병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영국의 문학가「셰익스피어」는 그들의 식민지였던「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위대한 문학과 성서 번역의 국가적 사업이 영어의 근대화와 보급에 위대한 힘이 되고 있고 그것이 점차로 대중적인 평범한 시민의 언어로 발전해 온 것이다.
그 동안에는 「라틴」말이 아니면 학자의 저서가 저서답지 않았던 모양이어서 마치 우리 나라에서 한문을 진서라고 하는 것 같은 시대가 17세기 내지는18세기 초 까지도 계속 되었던 모양이다. 그 뿐 아니고 영어를 써도 영어답지 않은 「라틴」말 식의 문자를 엮은 글이 많았던 모양이다. 지금도 영국은「비·비·시」방송에 의한 표준 영어의 세계적 보급에 힘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법원에서는 이미 그 판결문에 한글을 실용화하고 있다. 한글 타자기로 판결문을 찍어내는 실정은 행정부가 공문서를 한글로 하겠다는 것 이전의 사실이 되어 있는 것이다.
또 전신기에도 한글 타자기가 실용화 된지 오랜 것이다. 지금 한글 전용에 커다란 시대 역행의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대중을 상대로 대중을 위한 상품을 제작하고 있는 신문이 아직도 한문자 중독의 고루한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자를 제한 사용한다고 하면서도 아직 우리말을 살리는 우리 글의 표현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다.
우리말과 글의 발전을 위해서는 외국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 나라에도 더 훌륭한 문학자, 시인이 나와서 국민적 표준이 될 말과 글을 많이 내놓아 주어야 할 것이 절실히 요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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