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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잇따른 붕괴가 심상치 않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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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복
워싱턴특파원

최근 2주간 워싱턴 프레스빌딩 앞은 교통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네거리 한복판에 싱크홀(sink hole)로 불리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다. 장정 두세 명이 동시에 사라질 크기였다. 복구 공사로 도로 두 블록이 차단돼 출퇴근 시간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구멍이 생긴 위치는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에서 걸어서 채 5분도 안 걸리는 장소. 미국의 핵심 지역에서 황당한 사고가 난 것도 놀라웠지만 인부 얘기는 더 충격적이었다.

 “이곳 지반이 좀 특이한가 봐요?”(기자)

 “아뇨, 이 동네 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어디가 꺼질지 모르죠. 그래도 워싱턴 내에선 사정이 제일 나은데….”(건설업체 직원)

 시커먼 구멍 안을 들여다보니 100년도 더 된 낡은 파이프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걷다가 자주 땅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였다.

 문제는 최근 미국에서 붕괴 사고가 너무 자주, 갈수록 크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플로리다주에선 잠을 자던 남성이 침대와 함께 싱크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3월엔 일리노이주에서 골프를 치던 40대 남성이 5.5m 아래로 사라졌다 겨우 구조됐다. 한 달 뒤엔 시카고 주택가에서 자동차 3대가 갑자기 생긴 구멍 속으로 추락했다.

 월례행사는 이어져 지난달엔 워싱턴주 왕복 4차로 다리의 중간 부분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달리던 차들은 속도 그대로 강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 5일엔 필라델피아 시내 한복판에서 4층 건물까지 무너져 6명이 숨졌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붕괴 하면 우리에게도 아픈 기억이 많다. 1994년 성수대교,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유독 90년대엔 대형 참사가 많았다. ‘빨리빨리’만 외쳐온 압축성장의 후유증이라는 등 다양한 진단이 나왔다. 이유야 어떻든 부실 국가 꼬리표를 떼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다행인 건 뼈저린 경험으로 사회 안전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점이다.

 그 모든 걸 지켜본 기자로선 요즘 미국의 사고들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해되지 않는 건 그래도 덤덤한 미국 정부와 시민들이다. 일일이 손보기엔 땅덩어리가 너무 넓고, 재정 위기로 예산도 없으니 그런 것일까. 아니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총기 사고에 면역이 돼서일까. 하지만 도로와 다리와 건물이 차례로 무너지는 게 더 엄청난 재앙의 전조는 아닐까 두려워진다. 시사지 타임에 따르면 미 전역 60만7000여 개 다리 중 약 7만 개가 붕괴 위험이 있다고 한다. 자다가, 걷다가, 운동하다 사라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공포는 없다. 사회 불안은 국가 기능에도 장애를 가져오게 된다. 그 점에서 붕괴 트라우마를 극복한 한국이 좋은 상담 파트너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상복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