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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1000석 공연장에 280명 무료 관객 … 베를리오즈 연주회도 그랬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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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음악가의 생활사
니시하라 미노루 지음
이언숙 옮김, 열대림
280쪽, 1만6000원

큰 길보다 오솔길이 흥취가 있다. 산해진미보다 길거리 간식에 입맛이 당길 경우도 있다. 18, 19세기 유럽의 사회상을 음악가 중심으로 살핀 이 책이 그렇다. 베토벤 등 거장 음악가들도 우리네와 같은 생활인이었다는 점을 새삼 일깨우면서, 클래식 음악애호가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문외한들에겐 클래식 음악에 대한 거리감을 덜어준다. 정색을 한 서양음악사와 유명 작곡가들의 그렇고 그런 일화 모음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은 덕분이다.

 클래식 연주회에 참석하려면 갖가지 에티켓을 알아야 한다고들 한다. 이거 클래식 음악이 교양과 고급 취향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요즘 이야기인 모양이다. 1791년 런던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하이든은 세계 최고의 대도시 청중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연주회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부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 일부는 코를 골고, 일부는 꾸벅꾸벅 졸았다. 엄숙함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막 재산과 자유를 얻게 된 신흥 부르주아들이 음악회에서 기대한 것은 훌륭한 음악이 아니었단다. 연주회장은 얼마나 화려한가, 상류층 문화와 얼마나 비슷한가가 관심사였다. 음악회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연주회의 무료 초대권은 그 역사가 오래된 모양이다. 베를리오즈의 경우 1000명을 수용하는 연주회장에 280명은 무료 티켓으로 입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무료 초대권은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어 탈세에도 이용됐고, 이를 전문으로 처분해주는 업자도 존재했단다.

 형편이 이랬으니 유명한 음악가라도 부업을 하고, 후원자를 구하는 데 열을 올렸다. 작곡가들의 경우 악보 출판도 주 수입원의 하나였는데 저작권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만큼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단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에서 거의 동시에 출판된 쇼팽의 작품집은 각각 다른 사람이 교정을 본 결과 쇼팽 악보는 세 종류가 세상에 선보였다. 현재는 ‘에키에르 판’이 ‘내셔널 에디션’으로 공식 채용되었다.

 메트로놈의 발명자로 유명한 맬첼은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 악보 복사본을 몰래 입수해 런던에서 출판해 한 밑천 잡으려 했다. 이를 알게 된 베토벤은 작품을 영국의 섭정이었던 왕세자 조지 4세에게 헌정하고 성명을 발표해 맬첼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생활인으로서의 ‘지혜’가 예술가의 재능 못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지은이는 음악사회사를 전공한 일본 토호가쿠엔대 교수로, 이미 음악사의 뒷이야기를 뒤져내는 솜씨는 정평이 나 있다. 이미 번역 출간된 『음악사의 진짜 이야기』 『클래식 명곡을 낳은 사랑이야기』가 거장들의 에피소드 중심인 반면 이 책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무명 음악가들의 삶을 포함해 사회상에 초점을 맞췄다. 덕분에 피고용인 신세였던 거장들의 애환 등 예술의 민낯을 만날 수 있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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