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2103년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라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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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아편전쟁(1839~42)이 한창이던 1841년 1월 7일, 동인도회사가 만든 철제 증기선 네메시스호(그림의 오른쪽)가 청나라 범선 15척을 궤멸시키고 있다. 증기선은 당시 유럽의 압도적인 해상 군사력을 상징했다. [사진 글항아리]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언 모리스 지음
최파일 옮김, 글항아리
1008쪽, 4만2000원

‘우리가 성공한 이유는 뭘까. 하지만 우리 후손들은 앞으로 누군가에게 밀리지는 않을까.’ 후세를 걱정하는 개인이나 조직에게 떠오르는 질문이다. 서양은 19세기부터 이 두 질문을 던지고 있다. 베버·슈펭글러·토인비·케네디가 씨름한 화두다.

 이제 발등의 불이 된 화두다. 중국의 도전 때문이다. 동서양 대결 구도의 향방만큼 서구 지도자·지식인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는 없다. 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 고전학·역사학 석좌 교수가 쓴 이 책(원제 Why the West Rules―For Now)이 뉴욕 타임스·파이낸셜 타임스·이코노미스트 등 세계 명품언론의 화제거리인 이유도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모리스 교수에 따르면 서양이 세계 다른 지역보다 잘난 이유는 앞선 문화나 정치 덕분이 아니다. 서구인들이 IQ가 더 높아서도 아니다. 기독교가 유교·불교보다 더 우월하기 때문도 아니다.

 저자는 사람의 능력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본다. 모리스 교수는 가치·합리성·종교·정치 등의 변수에서 서양의 우월성을 찾은 선배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자유 ·관용 같은 ‘정신적인’ 원인은 발전의 원인·원동력이라기 보다는 결과라는 것이다.

 서양이 다 잘난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는 모리스 교수에게서 우리는 서양인들의 새로운 ‘겸손’을 본다. 새로운 ‘거만’도 발견된다. 농업이 시작된 이후 지난 1만5000년간 서양이 동양에 주도권을 빼앗긴 것은 서기 600년에서 1800년, 딱 1200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모리스 교수의 선배들은 서양이 동양을 앞선 게 아무리 일찍 잡아도 1500년 이후라고 판단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서양이 동양을 앞섰다는 ‘황당한’ 결론의 배경은 뭘까. 서양의 정의를 최대한 넓게 잡은 데 있다. 모리스 교수가 말하는 서양은 중동·북아프리카·유럽·아메리카를 모두 합친 것이다. 동양은 중국과 그 영향권으로 국한시켰다.

 모리스 교수가 야기하는 또 다른 논란은 역사와 개인의 관계다. 그는 영웅사관에 반대한다. 알렉산드로스·진시황·나폴레옹 같은 걸출한 인물이 있었건 없었건 역사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변화의 주역은 빼어난 사람들이 아니다. 모리스 교수가 주목하는 변화의 주역은 ‘게으르고 욕심 많고 겁에 질린’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또한 ‘어떤 일을 더 쉽고 더 안전하게 수행하며 이문도 더 많이 남기려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는 모리스의 선학(先學)들이 수행한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있기도 하다. 토인비와 마찬가지로 모리스 교수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문제로 본다. “과거 쪽으로 더 멀리 볼수록, 미래 쪽으로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며 모리스 교수는 해법을 역사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도전은 환경의 변화와 지리적 조건에서 나온다. 대략 400년마다 발전이냐 붕괴냐를 요구하는 도전이 들이닥친다.

 응전을 잘하면 모리스 교수가 개발한 ‘사회 발전 지수’가 올라간다. 이 지수는 에너지, 사회조직, 정보기술, 전쟁 수행 분야에서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get things done)’을 수치화한 것이다. 모리스 교수는 현재 세계의 사회발전지수가 900점이라고 주장한다. 앞으로 100년 동안 4000점이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책의 원제에는 ‘현재로서는(For Now)’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서구의 세계 지배 시대는 2103년에 끝난다. 중국이 중심에 서는 ‘아시아의 세기’는 22세기에 개막하는 것이다.

 동(東)이 서(西)를 앞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리스 교수는 두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한 가지는 서구인들에게 악몽 같다. 서구가 세상을 서구화(Westernize)시켰던 것처럼 중국이 세상을 ‘동양화(Easternize)’시킨다. 유럽·미국의 영화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학교에서는 콜럼부스가 아니라 정화(鄭和), 플라톤이 아니라 논어를 가르친다. 다른 시나리오는 ‘희망적’이다. 동서 구분은 의미가 없다. 세계의 주도국 중국은 이미 서(西)의 일원이 된, 서구화된 중국이기 때문이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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